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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해산물을 산지에서 먹고 싶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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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와 홍게

흔히 바닷가에서 해물을 먹는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것에 대해서도 그렇듯) 해산물의 세계를 잘 모른다. 어디서든 광어나 우럭만 먹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조금 안타깝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광어는 대부분 양식, 그중 과반수는 제주산이다. 어디에 가서 뭘 먹어도 제주산 양식 광어를 먹고 온 것일 수도 있다. 해산물은 산지와 제철이 있는 식재료다. 가장 맛있는 때의 음식을 싼값에 먹을 수 있다. 기왕 갈 거라면 제철 해산물을 추천하는 이유다.

동해에는 홍게가 있다. 이 게는 대게보다 작고 저렴하며 껍질이 얇다. 맛도 다르다. 대게가 달달하고 꽉 차 있다면 홍게는 짭짤하고 물기가 많다. 겨울에 트럭에서 삶아 파는 홍게만 기억한다면 모를까, 제철 산지의 홍게가 싸서 덜 맛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그리고 대게는 12월 10일부터 조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께서 이 글을 읽으실 즈음은 제철이 아니다. 홍게는 지금이 한창 제철이다.
동해안의 주요 어업 전진 기지 중 하나인 주문진항에는 어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수산시장이 있다. 이름도 어민수산시장이다. 100m 정도 되는 짧은 길 양옆으로 동해의 생선과 해산물을 판다. 문어, 홍게, 대게, 복어, 대구, 도치, 도루묵, 성게, 털게, 모두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해산물이다.
시세는 들쑥날쑥하다. 12월 중순에 취재를 갔을 때는 12마리를 3만원에 샀다. 게는 마리가 아니라 무게로 계산하는 것이며 이번에 산 게 중에는 다리가 떨어진 게가 몇 머리 섞여 있었지만(다리가 없으면 상품 가치가 급감한다) 서울보다 싸고 신선한 것만은 확실했다. 가서 먹는 보람이 있다.

게를 시장에서 바로 먹을 수는 없다. 머무르는 곳이 있으면 근처의 ‘게 쪄주는 집’에서 쪄서 가져가면 된다. 그냥 먹을 거라면 게를 살 때 적당한 식당을 물어보면 된다. 바닷바람에 얼얼해진 코를 녹이고 있으면 20분쯤 후에 찐 게가 나온다. 익은 홍게가 접시 가득 쌓인 풍경은 식욕과 직결된다. 하나씩 다리를 뜯어서 다리 양 끝을 조금씩만 잘라 살짝 빼면 깨끗하게 살을 발라낼 수 있다.
홍게와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은 맥주다. 짭짤한 홍게 살과 싱거운 카스의 조합 덕에 게 살과 맥주잔을 번갈아 씹고 삼키게 된다. 홍게 다리 살 한 입에 맥주 한 잔, 또 한 입에 한 잔, 이러다 보면 세상에 걱정할 게 뭐가 있냐 싶어진다. 온갖 반목과 분쟁에 지친 사람들이 겨울 동해에서 찐 홍게에 맥주를 곁들인다면 세상이 조금은 평화로워질 것 같다. 겨울 홍게는 그 정도로 맛있다.

가는 방법 서초 남부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서 주문진 버스 터미널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 반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20분에 한 번씩 운행하는 고속버스를 타도 된다. 강릉고속터미널과 주문진항은 약 20분 거리다. 동해고속도로 현남 IC와 가깝다.

가격 홍게는 매일 가격이 다르다.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도 하니 흥정을 잘 하면 좋은데 도시 사람들은 흥정이 쉽지 않다. “몇 명 먹는데 얼마예요?”라고 묻는 게 더 낫다. 현금만 받는다.

서해와 굴

충남 보령의 장은항이 유명하거나 가기 쉬운 곳은 아니다. 덕분에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바닷가 특유의 따뜻한 환대가 있다. 덜 알려지고 가기 쉽지 않은 만큼 한적하고 여유롭다. 여기는 굴로만 유명해졌다. 그 가운데 있는 ‘갯마당’은 이 거리에서 가장 먼저 영업을 시작했다.

“남편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통영에서 굴 양식을 배워 와서 보령에서 굴 양식을 시작했어요. 산지는 여기 앞바다에서 배로 30~40분쯤 가면 돼요. 다른 데 굴보다 뭐가 좋냐고요? 남해에 비해 여기가 좀 더 위쪽이라 바닷물이 차고 이쪽 앞바다가 플랑크톤이 많아서 알이 빨리 차요.” 인상 좋은 갯마당 사장님이 이야기한 이곳의 탄생 설화다.

식당에 들어가면 가스 화로가 내장된 철제 테이블이 터널 같은 모양의 식당에 죽 놓여 있다. 여기 앉아서 불을 켜놓고 기다리고 있으면 난롯가에 앉아 있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3만원 단위로 파는 굴구이를 시키면 한 양동이의 석화가 나온다. 7~8kg쯤 된다고 하는데, 이래서 산지구나 싶은 거대한 양이다.

불이 올라온 화로에 한 양동이의 굴을 구워 먹는 게 굴구이의 전부다. 날것을 그대로 먹어도 될 정도로 싱싱한 굴이니까 얼마나 익힐지는 당신 마음이다. 구워주시던 분은 굴 껍질의 물기가 마를 정도만 돼도 다 익었다고 했다. 장갑 낀 손에 집게를 쥐고 굴을 잡은 후 다른 손에 칼을 잡고 껍질을 열어 살살 까먹으면 된다.

화로 가득 굴을 한 판 올리고 기다리면 치직치직 하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맞춰 익은 굴을 화로 가장자리에 놓고 까먹은 후 껍질을 버리고 옆에 있는 굴을 또 올린다. 누워서 조개껍질을 깨 먹는 비버처럼 그걸 반복하다 보면, 참 호젓한 겨울 여가로구나 싶어진다.

다른 굴 요리도 많다. 엄청난 양의 굴을 굽다 지치면 남은 건 쪄주기도 한다. 굴칼국수와 굴밥도 좋은 재료로 잔재주 없이 만든 맛이 난다. 굴무침은 정말 그날 오전에 바로 무친 것이다. 사 가고 싶을 정도로 싱싱하고 맛있는데 실제로 작은 통에 담아 팔기도 한다.

장은항에서 굴을 먹는 건 겨울에 수도권 인근에서 할 수 있는 인상적인 순간 10위 안에 들 것이다. 용산역에서 옛날 기차를 타고 작은 기차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좁은 길을 한참 지나 작은 어촌에 도착해서 친절하되 호들갑스럽지 않은 아주머니들이 있는 굴구이 식당에 들어가 천천히 쉼 없이 굴을 까먹고 구워 먹고 쪄 먹고 나와서 식당 앞에 있는 잔잔하고 맑은 바다를 바라보는 일이니까. 굴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가는 방법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장항선을 타면 두 시간 안팎으로 광천역에 도착한다. 광천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면 된다. 택시비는 2만원쯤 나왔다. 서해안고속도로 광천 IC와 가깝다. 취재를 도와준 갯마을의 주소는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산206이다.
041-641-8007

가격 한 양동이가 나오는 굴구이나 굴찜이 3만원, 생굴 1만5천원, 굴밥은 1만원, 굴칼국수는 6천원. 석화는 3만원 단위부터 전국 단위 택배도 된다.

남해와 삼치

삼치는 비린내가 없어서 생선에 거부감이 있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우리가 이 생선에 대해 아는 건 대부분 여기까지다. 사실 삼치는 몸길이가 1m까지 자라는 큰 생선이다. 회로도 먹는다. 성질이 급해 빨리 죽고 지방이 많아 부패가 빨라서 산지에서 즐길 뿐이다. 그 제철 삼치 회를 먹으러 여수로 갔다.

여수의 연등천 양옆에 포장마차촌이 있다. 번호로만 영업하는 곳이 개천 좌우로 얼추 10곳쯤 된다. 이 포장마차들은 해물 전문이다. 앞바다의 제철 해물을 재료로 해달라는 건 다 해주는 분위기다. 우리는 41번 포장마차로 갔다. 쇼케이스에 앞바다에서 나는 각종 생선과 해물이 꽉 차 있었다. 이날의 목적이었던 삼치는 그 안에 있는 것 중 가장 컸다. 그걸 회와 구이로 부탁했다.

여기서만 30여 년을 일했다는 아주머니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삼치를 꺼내 남자 손바닥만 한 크기로 두세 토막을 썰었다. 반은 회, 반은 구이가 될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옆에 계시던 다른 아주머니에게 숯을 올려달라 청하고 회를 썰기 시작했다. 상차림도 잊지 말고 적어둬야 할 정도로 푸짐했다. 동치미, 묵은지, 달걀말이, 우거짓국, 갈치 속젓, 귤과 찐 고구마, 쌈 채소가 기본인데 이것만 깔아도 상에 남는 공간이 별로 없었다.
삼치 회가 먼저 나왔다. 먹는 방법이 진한 사투리로 들려왔다. “이 김에 싸서, 삼치를 한 장 얹고, 양념장의 양파랑 같이 싸서 드쇼잉.” 시키는 대로 했다. 돌김의 메마른 질감, 두껍게 썬 삼치 회의 기름진 질감, 거기에 물기를 머금은 싱싱한 양파의 질감이 어울리는 동시에 김과 삼치 회와 양파와 양념장이 각자의 향을 내며 충돌했다. 좋은 회는 양념이 필요 없다지만 41번 포장마차의 방식도 대단했다. 크고 기름진 제철 삼치구이가 맛있었던 것도 물론이다. 기름기 많고 신선한 생선을 숯불에 적당히 구우니 이런 밥반찬이 또 있을까 싶었다. 마침 밥이 한 그릇 나왔다. 이 삼치구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다름아닌 흰 쌀밥이었음을, 한 입 먹고 바로 알게 됐다.

포장마차는 한적했다. 지금은 굴철이라 이쪽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굴 덕분에 이곳에서는 도시 사람이 어렴풋이 떠올릴 겨울 바닷가의 애수 같은 게 감돌았다. 밖에는 바람이 불고, 초저녁의 포장마차에는 사람이 없고, 의자 옆으로는 따뜻한 난로의 열기가 느껴지고, 서걱거리는 삼치 회를 먹으면서 삼치구이가 숯불에 익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소주잔을 기울이는 서정이. 그걸 느끼려면 역시 겨울이 좋을 것 같았다. 겨울밤은 기니까. 삼치도 제철이니까.

가는 방법 KTX가 여수엑스포역까지 가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면 KTX 산천 기준으로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면 교동시장에 도착한다. “연등천 포장마차촌 가주세요”라고 하면 된다. 주소와 연락처는 따로 없다.

가격 메뉴는 없다. 생선에 대해 잘 안다면 사장님과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겠지만 모른다면 요즘 뭐가 좋은지 묻는 게 좋겠다. 12월 중순에 찾았을 때 삼치회는 3만원, 삼치구이는 2만원이었다. 이런저런 것이 더 들어가 있지만 그게 뭔지는 가서 직접 묻는 게 낫다.

글=박찬용 젠틀맨 기자, 사진=이승복, 정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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