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상처 나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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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런 분들이 있어 살맛이 나지요." 태풍 '나비'로 침수 피해를 본 경북 울릉군 서면 주민 이용기(76.남양리)씨는 18일 집에서 추석 차례를 지낼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방을 도배(사진)하고 보일러도 고쳐주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폭우에 아내가 실종되고 집도 침수돼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자원봉사자 덕에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서울의 시민단체인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과 '재해극복범시민연합'소속 회원 12명.

남녀 6명씩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단장 고진광)은 16일 서면 남양리에 도착해 복구작업에 나섰다. 남양리는 태풍 때 폭우로 전체 621가구 중 200가구가 침수되거나 부서지는 등 울릉도에서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다.

이들은 보일러.전기.도배 기술을 가진 3~4명으로 팀을 만들어 능숙한 솜씨로 집들을 손보기 시작했다. 진흙투성이인 벽지를 걷어내고 도배를 했다. 고장난 보일러도 새것으로 갈았다. 재해극복범시민연합 육광남(54) 이사장은 "회원 모두 10여 년간 자원봉사하면서 전문가 수준의 기술을 익혔다"고 말했다. 남양1리의 이용길(65) 이장은 "추석 연휴기간 봉사 활동한 사람은 이들뿐"이라며 고마워 했다.

이들은 첫날부터 서면사무소 2층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잠자리를 해결했다. 식사도 직접 지었다. 주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매일 오전 7시 작업을 시작해 오후 9시까지 강행군했다. 5일간 구슬땀을 흘린 끝에 집 14채가 말쑥하게 단장됐다. 고 단장은 "남들이 쉴 때 하는 것이 진정한 봉사"라며 "정부도 울릉도 복구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고 단장은 1995년 중앙일보의 제2회 자원봉사대축제에서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을 수리해주는 봉사활동을 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재해극복범시민연합은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과 수해지역을 찾는 등 10여 년간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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