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여보」의 시선(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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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죽어있던 대지에서 개구리가 튀어나오고, 그리고 나비가 날아오를 것입니다. 꽃이 필것입니다. 마른 잔디에서도 아지랭이가 피어오를 것이고, 비가 며칠만 내리면 온통 천지가 연두빛으로 바뀔것입니다.
그러고보면「봄」이라는 우리말자체가 매우 시적으로 들립니다. 영어의 스프링은 다 알다시피 뛰어오른다는 동사에서 비롯된 말이지요. 그것이 명사로 바뀌어 「샘」(천)이 되기도하고, 「용수철」이 되기도하고 또 봄이라는 계절어가 된것이지요. 그러니까 영국사람들에게 있어서 「봄」의 이미지는 샘처럼 솟아오르고 용수절처럼 튀어오르는 활력의 힘인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봄을 근육으로 느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 불어의 프랭탕은 정반대로 논리적입니다. 그것은 첫째를 뜻하는「프랭」과 시간을 뜻하는 「탕」이 합쳐서 만들어진 말이기 때문입니다. 즉 봄은 최초의 시간이고 사계절가운데의 첫계절이라는 뜻이지요. 그들은 두뇌로 봄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손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한국어의 봄은 영어처럼 근육형도 아니요, 불어같은 두뇌형도 아닙니다. 감성과 논리의 한 복판에 있는것이 바로 한국어의 봄인것 같습니다.
언어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나라말의 「봄」은 보다(견)라는 동사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옛 선조들은 눈을 뜨는것, 그리고 밖을 보는것 그것이 봄의 의미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본다는것은 단순한 감각의 세계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물을 의미없이 쳐다보지는 않습니다. 본다는것은 생각한다는것이고 동시에 행위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만이 아닙니다. 꽃은 식물의 눈입니다. 봄이되어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우주를 향해 생명이 눈을 뜬다는 것 입니다. 땅이, 하늘이 그리고 얼었던 강물이 모두 눈을 뜨고 빛을 봅니다. 거기에는 단지 기쁨과 활력속에서 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 생명의 도약을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관조의 세계가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보다」라는 말자체가 내포적인 묘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화를 걸고있는 사람들을 조금만 관찰해 보십시오. 전화는 귀로 듣는것인데도 「여보세요, 여보세요!」를 되풀이합니다. 그것은 여기를 보십시오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본다는것은 주의를 끈다는 말입니다. 관심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부를때에 보다라는 동사를 사용해 이봐(이것봐), 여봐(여기보아)라고 합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영어의「핼로」와는 천양지차라고 할수있습니다. 핼로는 의성어이고 그 어원을 거술러올라가면 사냥개를 부르는 소리와 같은 뿌리의 말이라는것을 알게될것입니다. 사냥개를 추기듯 단지 소리를 내어 상대방의 주의를 끌려고 한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시선으로 인간의 관계를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여보」라는 말로 통합니다. 물론 그것 역시 「여기를 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지요. 본다는것은 단지 감각적인 행위만을 뜻하는것은 아닙니다.「애를 본다」 「집을 본다」라는 말을 보아도 알수있듯이 그 말속에는 살피고. 지키고 애정을 주는 복합적인 뜻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때로는 그 말이 모순적으로 쓰이게 될때도 많은것입니다.
운전사가 교통순경에게 적발되었을때 흔히 듣는 말이「한번만 봐달라」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한번만 눈을 감아달라」, 위반한것을 「못본체 해달라」고 해야할 자리에서 거꾸로 「잘 봐달라」고 하니, 여간한 모순이 아닌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법속에는 한국인의 인간관계와 그 시선의 민중적인 철학이 숨어있는것입니다. 사물을, 그리고 타자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근본적으로 따스한 것으로 생각해왔다는 것입니다. 마치 봄볕처럼 말입니다. 노려보는 시선, 경계하는 시선, 냉철하게 꼬나보는 시선,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서구의 그 싸늘한 시선과는 아주 다른것입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는것」, 이것이 한국인의 대표적인 시선인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바라볼때의 그런 시선말입니다.
꽃이핀 봄철의 들판을 쳐다보는 그런 시선말입니다. 「타자는 지옥이다」고 말했던 「사르트르」의 그 실존적시선, 대결의 시선, 감금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인것입니다. 다정한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말 「여보!」의 그 시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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