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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 회장 직설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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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60)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소신’으로 유명하다. 두산그룹 회장이기도 한 그는 14만 상공인을 대표하고 있다. 뜨거운 사회 쟁점에 거침없이 할 말 다하는 경제인이다.

그런 박 회장이 1일 신년 인터뷰에서 최태원 SK 회장의 가석방 얘기를 꺼냈다. 그는 “최 회장의 경우 판결이 나왔고, 처벌 기간을 상당히 이행했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올해 경제가 어려우니 그냥 풀어 달라’는 접근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SK는 아침과 저녁 상황이 바뀌는 첨단 업종”이라며 “실질적으로 그룹 수장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가석방 논란에서도 이런 점을 감안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꼭 한번 기회를 줘서 국내 5대 그룹 중의 하나가 변화를 일으키면, 교도소에서 밥을 더 먹이는 것보다 가치있는 투자 아닙니까.” 박 회장은 “그냥 편을 들자는 건 아니다”면서 “간곡하게 요청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제인 가석방 못잖게 뜨거운 감자의 하나가 바로 ‘반재벌 정서’다. 오너의 권위적 문화가 자초한 ‘대한항공 회항’ 사건이 불쏘시개가 됐다. 평소 직원 1200명을 페이스북 친구로 두고 ‘소통의 달인’으로 불리는 박 회장은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먼저 그는 “지나친 압축성장의 성장통이 지금 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오너 3세들의 경영 참여를 막자는 획일적 접근법은 안된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식을 상속받아 지배권을 행사하는 걸 인위적으로 막는 건 힘듭니다.”

해법의 열쇠는 ‘자수성가’라고 했다. “스스로 기업을 일궈 키우는 곳이 20대 그룹의 절반 정도 돼야 해요” 그래야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로 쏠리는 의존도가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드라마 ‘미생’으로 상징되는 폭발 직전의 청년 실업 문제에도 숨통이 트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수술법도 거론했다. “지금까진 대기업들에게 들어오지마, 건드리지마, 이렇게 야단을 쳤어요.” 박 회장은 이런 낡은 관행을 깨려면 진입 규제도 과감하게 풀어주고, 자수성가형 기업에 파격적 지원을 하라고 주문했다.

화두는 자연스럽게 ‘규제 혁파’로 이어졌다. 올해 국가적 과업이기도 하다. “정치권 인사들도 많이 만나는데 ‘뭔가 해달라’고 주문하면 ‘그 얘기 맞는데 이 상황에서 되겠느냐’는 답이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박 회장은 지금 진행되는 규제 완화를 ‘낮은 가지의 과일 따기(low-hanging fruit)’에 비유했다. 당장 문제가 불거지거나 손쉬운 규제를 푸는데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쓴소리는 계속됐다. “결국 큰 규제들이 바뀌어야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진입장벽ㆍ허가제 같은 사전 규제부터 풀라고 했다. “일단 일을 벌리는 분위기로 사회를 바꿔놔야죠.” 그러면서 적폐의 하나로 서비스업을 꼽았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비상구다. 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개혁이 안 된다고 했다.

박 회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도 적잖다고 했다. 지난해 그는 비행기를 50번 탔다. 세계 곳곳 28만㎞를 누볐다. 한국 경제의 전도사 역할을 했다. 취임 뒤 박근혜 대통령과 가장 순방을 많이 다닌 경제인으로 꼽힌다. 그는 “올해에도 대통령 순방은 일단 다 따라다닐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순방에 나서면 ‘팀 코리아’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고 했다. 대통령ㆍ공무원ㆍ기업인이 한 팀으로 뭉쳐서 ‘세일즈맨’이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아주 독특한 방식입니다.” 일화도 소개했다.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땐 그동안 난항을 겪던 현대엔지니어링의 3조원 짜리 가스시설 공사가 일사천리로 풀렸다는 것이다. 이날 인터뷰 말미에서 그는 ‘시대정신’을 강조했다. “구조개혁 만으론 다 해결이 안돼요. 동반해서 가는 길을 모색해야죠. 그게 세계적인 조류라고 박회장은 강조했다.

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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