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서방파 부두목 징역 4년…드러난 범서방파 운영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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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3대 폭력조직인 '범서방파'의 부두목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판결문을 통해 엄격한 행동강령 등 범서방파의 운영방식이 공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 김우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단체 등의 구성·활동) 혐의로 기소된 범서방파 부두목급 조직원 김모(48)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김씨와 함께 기소된 조직원 백모(41)씨와 장모(32)씨에게는 각각 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1년2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범서방파는 회칼(사시미칼)을 잘 쓰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던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와 함께 국내 3대 폭력조직으로 불린다. 범서방파는 1977년 조직된 '서방파'의 후신이다. 범서방파의 두목인 김태촌(2013년 1월 사망)은 서방파의 부두목이었다. '서방'이란 이름은 김태촌의 출신인 전남 광산군 서방면에서 따왔다.

1989년 서방파가 수도권 등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새롭게 결성된 범서방파는 김태촌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갔지만 곧장 위기에 부딪혔다.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 때문이었다. 이때 무렵인 1992년 김태촌은 '범서방파'를 결성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1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김태촌의 수감 이후에도 범서방파는 그때그때 새롭게 후계자를 앉히며 세력을 유지시켜나갔다. 2009년에는 조직원 30여명을 거느리고 있던 '함평식구파'를 규합해 세력을 확장하기도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범서방파는 세력을 유지·확장하기 위해 엄격한 규율로 조직을 관리해왔다. 우선 범서방파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조직원들로부터 선택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를 선택한 기존의 조직원은 자기보다 한 기수 위 선배들에게 자신이 뽑은 사람을 데리고 가 인사를 시키고 허락을 받은 뒤에야 합숙소 생활을 시킬 수 있었다. 합숙소 생활은 수개월간 이어졌으며 윗선으로부터 인정 받은 경우에만 단합대회 등 전체가 모인 장소에서 소개함으로써 정식 조직원이 됐다.

선배 조직원은 신입 조직원에게 조직 내부의 규율 등을 가르쳤다. 이들의 행동강령은 다음과 같았다. ▶선배를 보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한다. ▶선배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항상 '형님'자와 '요'자를 붙여 말한다. ▶선배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지시는 바로 윗 선배에게 받는다. ▶2년 선배부터는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다른 조직 식구들을 만나도 인사 시켜 주기 전에는 모른 체하고 기죽지 않는다. ▶언제든지 연락이 될 수 있도록 항상 전화를 잘 받는다. ▶식구들 경조사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식사 때에는 나이 순서대로 일어서서 90도로 인사를 한 후 식사를 한다. 이 같은 행동강령을 바탕으로 이들은 엄격한 상하 질서를 강조했고 주기적으로 대규모 단합대회를 통해 친목을 다졌다.

이들은 또 조직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남과 경기도 일산 일대를 중심으로 유흥업소 및 사설 도박장, 불법 성인 PC방 등을 개설해 운영했다. 이외 각종 이권 다툼에 개입해 위력을 행사하고 대가로 돈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마련한 자금은 조직원들의 변호사 비용이나 벌금, 명절 떡값, 다른 조직과의 전쟁시 사시미 칼 및 야구방망이 등 흉기 구입비용으로 사용했다.

이번 재판에 넘겨져 선고를 받은 김씨는 1990년경 범서방파에 가입해 최근까지 부두목급으로 활동했다. 백씨는 2000년 초 행동대원으로 가입했고, 장씨는 2009년 범서방파에 합류한 함평식구파 출신으로 행동대원급이었다. 이들은 지난 2009년 11월 11일부터 12일 새벽 사이에 있었던 부산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와의 '강남 칼부림 대치사건'에 가담했기도 했다.

강남 칼부림 대치사건이란 2009년 11월 11일 칠성파 부두목과 범서방파가 이권을 두고 서울 역삼동 룸살롱에서 벌어진 다툼이 기화가 돼, 양측이 서로 '칼부림'을 계획했던 사건이다. 이를 위해 칠성파에서는 80여명의 조직원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범서방파는 충장오비파, 방배서방파 등 '범호남권' 폭력조직원들에게 연락해 강남에 집결시켰다. 김씨는 조직원들에게 500만원을 줘 사시미 칼 5개,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 14개, 반코팅장갑 및 검정색 테이프 등을 구입하게 해 무장시켰다. 이들은 출동한 경찰을 피해가며 '전쟁상황 대책회의'까지 열었지만 결국 다툼을 일어나지 않았다.

재판부는 "폭력 범죄단체가 조직의 위세를 바탕으로 폭력 범죄를 저지르면 직접 피해자는 물론 선량한 다수의 시민들에게까지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범행은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고, 김씨가 부산 칠성파와의 대치와 관련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점이 인정된다"고 봤다. 다만 백씨와 장씨에 대해서는 ▶범행을 대부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는 점, ▶행동대원급 조직원에 불과해 지시에 따라 범행에 가담한 점 등을 참작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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