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새풍속(34)각종 전자품 운동기구-저울등 교자로 바로 나와 신용도 높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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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디지털시대>
『따르르릉…일어나세요. 출근전 운동할 시간입니다』
증권회사원 이종호씨(32·서울 신월동)의 하루는 디지틀 시계 기상 나팔로부터 시작해 각층 디지틀 제품과의 씨름으로 끝난다.
새벽 6시. 수동식 사발시계보다 부드럽고 은은한 울림소리에 일어난다.
응접실벽의 발광다이오드(LED) 디지틀 벽시계도 정확히 6시를 어둠속에서도 알려주고 있다.

<악력기-반보계도>
줄넘기 줄의 손잡이에 달린 숫자판도 디지틀이다.
하나 둘 세지 않고도 힘들때까지 줄넘기를 하고 숫자판을 들여다보면 뛴 만큼의 숫자가 나타나있다.
오늘은 3백번. 회사에 출근해서도 디지틀 계산기를 눌러대고 디지틀로 연결되는 전화기에 매달리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전자제품·운동기구·저울·통신기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주변엔 디지틀(숫자)제품으로 가득 찼다.
서울 신반포 지하상가 D점육점. 고기를 썰어, 사각상자에 올려놓으면 g과 가격이 붉은 숫자로 앞뒤쪽에 나타난다.
고객과 주인이 함께 볼 수 있는 디지틀 저울이다.
지난해 9월 눈금 저울에 오차가 생겨 20만원의 벌금울 물었던 주인 조현미씨(39·여)가 65만윈에 구입한 것.
조씨는 『저울을 바꾸기전에는 불량 저울기사가 나올때마다 손님들의 눈길이 따가왔으나 지금은 저울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장사도 잘된다』고 했다.
D정육점의 디지틀 저울이 인기를 끌자 바로 맞은편 K정육점도 한달후에 디지틀 저울을 사들여 단속직원이나 손님들과의 시비의 소지가 아예 엾어졌다.
박저자씨(31·회사원·서울망원1동)는 살빼기 작전에 나선 뚱보총각. 만보계를 허리에 차고다니며 한발짝 걸을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 하루 1만걸음씩 걷고있다.
서울 세봉상가 아세아 극장앞. 「엘리제를 위하여」가 경쾌하게 흘러나오고 각가지 효과음이, 요란하다.
번호만 누르면 음악이 횰러나오는 뮤직박스 판매점 앞에는 매일같이 초·중학생들이 몰려든다.
뮤직박스는 각종 맬로디나 효과음을 직접회로에 기억시켰다가 재생시키는 것으로 독특한 소리가 흥미를 돋운다.
이외에도 주파수가 자동으로 맞춰지는 전축, 바늘뜸의 간격용 디지틀로 조절하는 재봉틀, 맥박수가 기록되는 맥박측정기 과속차량을 잡는 스피드건, 디지틀 현관자물쇠, 숫자로 처리된 색상을 자동으로 재현하는 디지틀 윈색제판기 등 디지틀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있다.
디지틀이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것은 지난 75년. 다소 볼품없는 발광식 숫자판 디지틀 시계가 등장하면서부터.

<손님과의 시비없어>
이어 액정(액정·LCD)이 전기(전기)적 신호에 따라 분자배열이 달라질 때 빚이 통과하지 못함을 이용, 숫자가 나타나는 액정 전자시계가 등장, 널리 보급됐다.
디지틀 시계의 판매 이제 시계총판매액의 35%를 차지, 압도적이었던 기계식 시계를 물리칠 기세다.
디지틀화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값싼 반도체회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비슷한 값을 유지하는게 대부분이다.
시계의 경우 계산기 기능을 하는것도 3만 5천원이면 구입할 수 있으며 아동용 만화시계도 1만5천원내외. 다만 디지틀 저울처럼 국산제품이 본격화하지 못한 제품은 개선된 성능에 비해 훨씬 비싼값으로 내놓고있다.
디지틀 제품은 전자식과 기계식으로 구분된다.
기계식은 악력기나 줄넘기에 달린것처럼 운동에 따라 숫자가 나타나도록 한 초보적인것. 이에 비해 전자식은 받아들인 신호를 전기적 신호로 바꿔 디지틀로 표현하는 것이다.
스피드건은 달리는 자동차에 초음파를 발사해 반사되어 오는 파에 따라 차의 속도가 측정되는 전자식 디지틀.
전화도 디지틀 방식이면 옵션을 전기적으로 부호화해서 보내게 돼 보다 깨끗하고 대량으로 전달된다.
우리나라의 교환시선의 14%가 디지틀 방식이고 전화국 사이의 전송로는 34%가 디지틀 어있다.
체신부는 앞으로 전국의 신설되는 교환기와 전송로를 디지틀 시스템으로 바꾸어 나갈 계획.
한국전기통신공사 기술 개발실장 이응효씨는 『통신방식을 디지틀로 바꾸어 나가면 새로운 전화서비스가 가능하고 불룸률이 크게 떨어진다』며 디지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모든 정보를 숫자로 신속히 나타내주는 디지틀은 전자기술의 산물로 편리하기도하나 나름대로의 문제를 안고 있다.
디지틀 시계의 경우 시각은 정확히 알 수 있으나 과거와 미래의 시간 개념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전화기도 디지틀화>
시계의 기능은 역시 시각 뿐아니라 시간도 알려주어야 제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나온 시계가 날짜까지 알려주는 애널로그와 디지틀을 합친 애너-디지시계. 요즘은 디지틀 시계가 만화와 계산기·전자게임·TV에까지 붙여져 나와 시계같지 않은 시계가 됐다.
현재 국내의 디지틀화 수준은 상당히 뒤떨어져 있고 외국제품을 흉내낸 제품도 많아 신뢰성이 띨어지는 디지틀로 인식을 나쁘게 할 우려마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디지틀화가 은연중에 인간의 따뜻한 정을 앗아가지나 않을까하는 우려.
언젠가 물의를 일으켰던 버스 계수기처럼 인간을 속박하는 숫자놀음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장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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