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북핵타결과 한반도]⑤전문가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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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개국이 19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전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한 데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과 북한의 상호 양보 속에 이뤄진 결과물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전문가들은 "윈-윈의 성과를 올렸다", "앞으로의 난제를 풀 수 있는 전례를 만들었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원칙적 합의를 이뤘다", "완전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졌다"는 등 긍정적인 평가가 주조를 이뤘다.

하지만 향후 경수로 제공 문제 논의를 비롯해 당사국들의 합의문 이행 의지, 구체적인 안건에서의 의견 조율 등 만만찮은 과제가 남겨져 북핵의 완전해결과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정착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 = 전체적으로 북.미 간에 주고받기를 통해 '윈-윈'하는 성과를 올렸다. 북한이 경수로와 관련해 확실한 보장을 받지 못했지만 미국으로부터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공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얻어냈다.

평화적 핵에너지 사용 권리에 대해 다른 참가국들이 존중을 표시한 것은 현실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적당한 시점에 논의하기로 한 경수로는 경비절감과 지형조건 측면에서 함경남도의 신포 경수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북-미.북-일관계를 정상화 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은 한반도에서 적국 관계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남북의 평화정착 노력에 발목을 잡은 부정적 요소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5개국이 북한에 대한 에너지 지원의사를 밝힌 것은 북한의 당면한 경제살리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평화협정 체제를 협상하고 동북아 안보와 협력을 위한 방법을 찾는 데 합의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이 2개의 큰 틀에서 진행시킨다는 것이다. 평화협정 체제 협상은 다른 사안과 함께 진전되어야 할 문제다.

특히 이번 합의문 타결에는 북한의 큰 결단이 있었다.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한 것은 북한으로서는 생존을 건 선택이다.

따라서 미국은 경수로 제공과 평화협정 체제 협상과정에서 적극적인 이행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한은 '포기의 결단'을, 미국은 '양보의 결단'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당장 핵무기 포기 과정에 들어가지만 미국은 북한의 핵포기를 지켜보면서 마지막에 북측의 요구를 충족해 주는 것이다. 이행의 비대칭성이 있다. 미국의 확고한 이행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 =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다. 이번 합의문의 핵심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을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미국이 재래식 무기로 침공의사가 없다고 확인한 것은 북한체제 보장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제네바 합의에서는 핵공격밖에 없었으며 재래식무기는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은 대북 강경파들로 인해 평화적 핵이용과 경수로 제공을 허락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경수로 때문에 회담을 결렬시킬 수도 없어 과도기적 형태로 경수로 문제를 봉합한 것으로 보인다. 곧 뜨거운 감자인 경수로를 향후 회담으로 넘긴 것이다.

북한은 체제보장을 얻어냈으며 경제적 문제 등 다급한 사정이 반영된 다양한 지원 조치도 이끌어냈다. 특히 김일성 주석의 유언인 한반도 비핵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특유의 성격에 따라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

북.미관계 정상화는 체제보장과 관련된 약속으로 미국의 의지를 확인해 줬다. 이는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적대관계 해소라고 볼 수 있다.

에너지 제공은 경수로를 유보한 상태에서 과도기적으로 북한의 에너지난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경수로 지원이 수년 걸리기 때문에 긴급한 경제난제들을 풀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평화체제 협상은 6자틀을 동북아 안전평화협력의 틀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다.평화협정 체제 협상 논의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당사자가 될 전망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 = 이번 회담은 평화적 핵이용과 경수로 문제를 북.미 양쪽이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절충했기 때문에 앞으로 난제를 풀 수 있는 전례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로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한 것은 불가침조약 체결에 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경수로 문제를 미래로 돌림으로써 합의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반도 핵무기에 대해 그동안 NCND((시인도 부인도 않음) 정책을 취했지만 언제든지 핵항공모함으로 들락날락할 수 있으며 북한도 경수로 부분에 대해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따라서 미래가 중요하다.

북-미.북-일 관계를 정상화 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은 북핵의 종착역이다. 이는 미.일이 북한의 끈질긴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앞으로 북한이 정상국가로 나아가는 것으로 해석된다.

5개국의 대북 에너지 제공을 비롯해 교역.투자 등 경제적 협력 증진은 북핵이 해결되더라도 보상을 해 줘야 한다는 차원이다. 당장 2003년 12월 중단된 중유공급(1년에 50만t)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중유공급과 남한의 전력제공은 오는 11월 5차 회담 이후 본격화 될 전망이다.

평화협정 체제를 협상하기로 한 것은 1953년부터 2005년까지 지속된 정전협정을 영구적인 평화보장책인 평화협정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6자가 동북아에서의 안보와 협력을 위한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다자 안보틀로 가겠다는 의미다. 이는 또한 북한과 미국이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이행 과정에서 제재를 담보할 수 있는 틀이 될 수도 있다.

▲허문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전체적으로 볼 때 기본적으로 북핵문제가 완전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단지 봉합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과가 좋다.

북한은 경수로 제공이 불확실해 다소 밀린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북.미 관계정상화를 미국이 약속했다. 1항에서 밀렸지만 2항에서 받아내 북한이 크게 손해를 보지 않았다.

핵폐기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6자회담이 결렬되면 미국이 외교적 대화를 통한 해결책인 플랜A에서 압박과 제재를 동원하는 플랜B로 넘어가는데 이번 6자회담에서 이를 막아낸 것은 큰 성과다.

북.미관계 정상화는 전제조건이 주한미군 철수인데 이 문제가 향후 관심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합의문에서 남한이 92년 한반도비핵화 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반입하거나 배치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재확인한 것은 핵항공모함을 남한내로 들이지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평화협정 체제 논의는 합의는 봤지만 누가 당사자가 되느냐는 문제가 있다. 남한은 남북한, 북한은 북.미, 미국은 남.북.미, 중국은 남.북.미를 포함한 4자를 각각 선호할 것이다. 또 어떤 방식에 의해 무엇을 달성하느냐가 관건이다.

한편 이번 합의는 미국과 북한 지도부의 현재 사정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카트리나와 이라크 문제로 큰 곤경에 처했다. 미국의 안팎정세가 어려운 상황에서 북핵까지 결렬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북한은 10.10 당 창건 60주년을 앞두고 8.15민족대축전에 이은 북.미 대화의 성과물을 주민들 앞에 내놓아 김정일 정권의 위상을 과시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우리 정부는 상황을 낙관하지 말고 북핵문제가 잘 풀리고 평화통일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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