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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지방 행정구역 개편 주민 의사는 듣지도 않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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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열린우리당 지방행정체제 개편 추진 정책기획단은 서울특별시를 수도로 존속시키되, 현행 자치구를 인구 200만 기준으로 통합해 5개의 시로 구성하는 개편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행정구역 개편은 주민의 삶의 터전이자 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지역사회의 정체성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므로 정치권은 주민의 의사와 지방의회의 의견을 듣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법 절차를 통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지방의회의 의견을 듣는 등의 절차 없이 정치권에서 지방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주민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본다.

첫째,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전통적인 행정구역 때문이라는 인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정치권이 행정구역 개편 사유로 들고 있는 지역주의 선거의 원인은 중앙정치인이 선거 때마다 지역을 볼모로 민심을 이용한 결과임에도 지방행정구역의 문제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국민의 선택을 무시한 오만한 판단이다.

둘째, 시.군.구의 통합 또는 지방정부의 단층화는 중앙집권을 가일층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이는 지방분권을 국가발전전략으로 삼고 있는 세계사적 흐름을 역류하는 조치라는 점이 무시되었다는 점에서 과학성과 객관적 논의가 결핍돼 있어 이에 반대한다.

또한 지방행정 계층이 단층화되면, 국가가 시.도에서 해야 할 집행적인 업무까지 처리해야 하므로 공공부문의 개혁에 역행하는 조치다. 이는 공공부문의 경쟁력을 더욱 저하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가의 장래를 위해 반대한다.

셋째, 정치권이 지방정부를 30~60개의 광역화된 지방정부로 단층화할 경우 지역적 특성이 무시되고, 국가가 직접 지도.감독.관리하기에는 통치의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대한다. 지방정부의 단층화로 시.도가 폐지되면, 광역행정 및 광역개발, 시.군.구 간 분쟁조정, 시.군.구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을 국가가 직접 수행하게 되므로 중앙정부가 핵심역량에 집중하지 못하고 중앙정부 조직의 비대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넷째, 국민의 마음의 고향이자 애향심의 근거지이며, 역사성을 가진 시.도와 시.군.구를 인위적으로 개편하는 것은 찬란한 지역의 문화적 전통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다섯째, 현재에도 지방정부의 관할구역이 세계에서 가장 커 주민의 의사가 지방행정에 반영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정치권 안대로 자치계층이 단층화되고 광역화되면, 지역사회의 특성을 유지하기가 곤란해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에 위배되기 때문에 반대한다.

정치권은 지방행정구역 개편 이전에 국가-시.도-시.군.구가 본연의 사무를 창의적.자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김성호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