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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우리 부부는 이따금 시골이야기를 한다. 두 아이가 자라서 자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우리는 어느 시골에 가서 터를 잡고 밭을 갈고 씨를 심어 거두는 이야기다. 그것은 감상이 아니라 시골출신인 아이 아빠의 간절한 바람이다.
언제부터 마음속에 간직되어있는 그 시골에 투기돌풍이 인다는 기사를 읽었다. 돈 많은 투기꾼들이 마구잡이로 땅을 사서 이유 없이 땅값이 오른다는 이야기였다. 땅값이 오른다면 힘든 생활을 하시는 당숙님댁과 외가들이 힘이 좀 풀리실까?
아니다. 땅값이 오른다면 순간은 반가운 일인지 모르지만 땅값이 오른다면 그 땅이 결국 누구의 소유가 될까? 봄과 여름 가을을 넘기며 땅을 가꾸고 살필 임자가 농민이 아닌 돈 많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니 살벌한 느낌이 든다.
비온 날 물 잡아두었다가 가문 날 물길 내어 흙을 가꾸며 토마토 순 집어주고 포도송이에 봉지 씌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시골 사시던 고모님이 서울로 오실 때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넓은 집과 집을 둘러싼 텃밭, 그리고 기름진 텃논을 먼 친척 조카에게 아주 넘겨주시고 올라오셨다.
해마다 가을이면 그 조카분은 꾸러미 꾸러미에 노랑 검정콩과 찹쌀 깨랑 고르고 고른 씨앗들만 한 짐 지고 올라오신다. 그때마다 고모님은 올망졸망 비닐봉지에 넣어 가지고 우리 집에 오시곤 하였다.
그것은 주고 온 마음에 대한 보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주고 온 이도 받은이도 거저 주고 거저 받은 그 마음의 자세가 같은 것 같았다.
고모님이 시골의 집과 땅을 값없이 두고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먼 동네에 떨어진 것은 몰라도 눈만 뜨면 앞에 두고 보던 논밭까지 없앤다면 세상에 와서 남길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 아니냐는 말씀이셨다.
우리는 밤늦도록 지나온 시골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누가 어떻든 간에 우리마음속에 심어있는 그곳에 대한 바람은 날로 자라고 있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서울 관악구 신림3동711의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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