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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한의 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제관계에서 「사교」가 쌓여서 「공교」가 열리는 예가 많다. 국제관계가 외교라는 추상명사로 표현되기는 해도 결국 사람과 사람의 구체적인 접촉이 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레이건」 행정부가 미국 외교관들에게, 북한외교관과의 제한된 접촉을 허용하는 새로운 행동지침을 만든데 대해서 우리가 미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은 관심과 함께 일말의 불안을 느끼는 것도 양(사교)의 축적이 질의 변화(공교)를 가져올 수 있다는 판증법적 법칙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사람들이 「미소전략」이라고 부르는 이 행동지침이 미국의 북한정책의 기본적인 변화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도 잘 안다.
뿐만 아니라 철저히 폐쇄된 북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개방된 사회에 끌어들여 이념을 초월한 평화공존이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지를 인식시키는 것이 한반도에 궁극적인 긴장완화를 가져오는 수단의 하나가 된다는 것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우리 자신이 중공과 소련을 포함한 모든 공산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고, 그런 노력의 한 갈래로 한국의 관리, 학자, 언론인, 운동선수들의 소련입국, 그리고 소련의 관리와 언론인들의 한국입국을 실현시킨 처지에 있기 때문에 미국외교관들의 「미소전략」이 북한사람들의 호전성완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선의가 악용되어 「미소전략」을 세운 사람들뿐 아니라 한국에까지 뜻하지 않은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정상회담까지를 포함한 남북회담과 광범위한 교류를 북한에 제안해 놓고 있다. 이런 시기에 등장한 미국의 「미소전략」을 북한당국이 미국의 북한정책의 기본적인 변화로 오해하여 남북회담반대의 입장을 한층 강화할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겠다.
북한은 한국의 머리위로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미국을 상대로 한국문제를 협상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음을 우리도 알고 미국도 안다.
미국의 「미소전략」이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 북한과의 접촉의 확대를 촉발시킬지 모른다는 점도 우리의 걱정의 하나다.
한국과 소련의 접촉과 약간의 인적교류가 미국사람들의 눈에는 크게 확대되어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학자, 언론인, 현직 하원의원이 북한을 방문하고, 유엔주재 북한외교관들이 미국무성을 방문한 실적에 비하면 한-소, 또는 한-중공접촉이 미국의 경계를 정당화 시킬만한 정도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미소전략」의 등장이 소련과 중공을 상대로 하는 한국의 「독주」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일부 추측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미국이 만든 밸런스시트가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지 앉을 수 없다.
미국은 이미 77년 「카터」행정부 때부터 미국시민뿐 아니라 영주권을 가진 한국사람들의 북한방문까지 허용하는 조치를 취하고있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한-소간의 접촉에 비해서 미-북한의 접촉이 뒤지고있다는 계산은 성립되지 앓는다.
우리는 미국의 「미소전략」을 적극적, 전향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미국의 그런 행동지침에는 소련, 중공 그리고 다른 모든 공산국가들의 등을 한국 쪽으로 떠밀어주는 적극적인 노력이 따라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지위가 높아지고 북한과 서방세계의 관계가 한국과 공산세계와의 관계보다 우세할 경우 그것이 북한의 한국에 대한 자세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는 설명이 필요없는 일이다.
미국의 「미소전략」은 바람과 나그네의 우화에서 발상된 것이다.
추운 겨울날 바람과 해님은 들판을 걷는 나그네의 외투 벗기기 내기를 했다. 바람이 혼신의 힘을 다해 불었다. 나그네는 오히려 외투를 더 단단히 감쌀 뿐이었다.
이번에는 해님이 햇빛을 쨍쨍 비췄다. 그제서야 나그네는 외투를 훌훌 벗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물리적인 압력을 바람에, 「미소전략」을 햇빛에 비유한다.
이론적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경험의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미국이 「햇빛」을 보내건 「바람」을 보내건 북한은 한번도 외투를 벗을 기미를 보인 일이 없다.
미국은 북한의 이런 생태를 염두에 두고 「미소전략」을 신중하게 추진해야 미소를 담은 얼굴이 일그러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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