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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처럼, 다큐처럼…나영석·서수민·김태호 PD가 전하는 커리어 코칭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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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호
2001년 KBS 입사.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려 했으나 예능으로 성공했다. 대표작으로 ‘올드 미스 다이어리’ ‘해피선데이-여걸 식스’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등이 있으며 2011년 tvN으로 이적한 후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를 연출했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어떤 차이가 있나?

예능은 큰 틀만 짜놓고서 편하게 놀고 있는 출연자의 모습을 열심히 찍으면 된다. 반면, 드라마는 기획 때부터 준비 과정이 철저해야 한다. 그중 대본 작업이 가장 어렵고 막막했다. 하지만 무식한 게 용감했지.

시트콤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경험이 도움이 됐나?

‘올드 미스 다이어리’는 갑자기 연출을 맡는 바람에 PD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모두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편집 하나만큼은 미친 듯이 해봤다. 앞뒤로 어떻게 붙이면 시청자에게 공감을 얻을지 많이 배웠다. 그런 게 바탕이 되어 ‘응답하라 1994’를 찍을 땐 콘티도 안 짰다. 현장에서 바로바로 해치웠지.

PD의 자질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의력, 상상력이 중요했다. 하지만 현장에 끌어다 쓸 수 없으면 아무 소용없잖아. 실질적으로 적용할 줄 아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건 미련한 짓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걸 말해줄사람이 있다면 충분히 존중해주어야 한다. ‘응답하라 1997’ 때, 막내 스태프, 막내 작가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으려 했다. 난 콘텐츠 중심주의자여서 아이디어만 괜찮으면 누구든 상관없었다. 결국 PD는 그중에서 옥석을 가려내 잘 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

아이디어는 회의 및 마감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첫 방송 일이 잡혀야 회의 테이블에 앉아 아이디어를 미친 듯이 끄집어낸다. 사실 아이디어를 저장해두고 있어도 의미 없다. 비슷한 아이템이 타 방송국에서 1년 안에 종종 방송되기도 하더라고. 그때 돼서 후회해봐야 소용없지.

롤 모델이 있나?

JTBC 김석윤 PD. 시트콤 공부 해서 작품 만들고, 그러고 나서 영화도 하고. 그런 행보가 나한테 굉장히 힘이 된다. ‘응답하라 1997’ 을 해야 할지 최종 고민할 때도 형에게 가서 현답을 들었다. “해보지도 않고 뭘 고민하느냐”고.CECI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어떤 차이가 있나? 예능은 큰 틀만 짜놓고서 편하게 놀고 있는 출연자의 모습을 열심히 찍으면 된다. 반면, 드라마는 기획 때부터 준비 과정이 철저해야 한다. 그중 대본 작업이 가장 어렵고 막막했다. 하지만 무식한 게 용감했지.

서수민
1995년 KBS 입사. 2010년부터 ‘개그콘서트’ 연출, ‘폭소클럽’ ‘개그사냥’ 등을 통해 코미디의 부흥을 이끌었고, ‘비타민’ ‘스펀지’ ‘뮤직뱅크’ 등을 맡기도 했다. 현재 ‘해피선데이’ CP로 활동 중.

PD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놀아보고 많이 경험해라. 양다리 연애도 적극 추천한다. 그래야 이 남자, 저 남자 사귀면서 조직적인 즐거움을 어떻게 핸들링해야 하는지 노하우가 생긴다. 하다 못해 맥주를 마셔도 같이 마실 사람을 직접 모으고 어떤 안주를 먹을지도 기획해보자. 상대방이 싫어하면 왜 싫어할까 이유를 생각하자. 그런 과정이 모두 재미있는 판을 짜기 위한 학습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재미있는 판을 짜도 모두를 만족시키란 어려운 일 일테지.

‘개그콘서트’는 하나하나의 코너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코너 구성이 더 중요하다. 특정 세대가 좋아하는 코너만 배치하면 프로그램이 힘을 잃거든. 내 세대엔 조금 유치해도 내 아이는 몸 개그를 좋아하고, 남편은 아이가 지루해하는 직장 공감 개그를 좋아하지. 즉 4인 가족이 둘러앉아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누구는 안 웃더라도 누군가는 웃을 수 있게 구성해야 한다. 그게 곧 세대 소통으로 이어진다.

코미디 연출을 하려면 역시 개그감이 있어야 하겠지?

타고나는 면이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천재성보다 중요한 게 의지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의지가 있어야 열정적으로 개그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살아온 배경 같은 후천적인 요인이 개그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영석
2001년 KBS 입사.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으로 데뷔. 대표 연출작 ‘해피선데이-1박 2일’로 야생 버라이어티 시대를 열었다. 2013년 tvN으로 이적한 후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 ‘삼시세끼’ 연출.

예능 PD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뻔한 답변일 수 있지만, ‘크리에이티브’. 하지만 결국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니까. 나머지는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잘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PD마다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고 즐겨 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대중이 좋아하는 관심사도 있다. 이 교집합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래야 나도 즐겁게 만들 수 있고 그걸 대중이 호응해줘야 더 즐겁게 작업할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직관적으로 발견해내는 힘이 바로 잘 만든다는 것의 의미다.

그렇다면 나영석 PD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즉흥성, 재미, 사람 냄새 나는 것, 정, 감동… 흔한 말로 리얼리티라고 하는 ‘진정성’을 좋아한다. ‘1박 2일’ 이든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이든 내가 시청자들 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포인트는 거의 똑같다.

‘꽃보다’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뒀다. 여행 프로그램을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나?

‘1박 2일’을 하면서 시청자에게 전하는 진정성의 힘을 분명히 느꼈다. 사람들은 TV를 볼 때 진짜와 가짜를 정확히 구별해낸다. 겉멋이 아니라 진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차린다. 예를 들어 50년지기 친구들과 떠나는 배낭여행이라면 누가 봐도 진정성이 느껴질 것이다. 보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흐뭇한 본질적인 재미를 만들 수 있는 거지. 어르신과 배낭여행이라는 조합. 올드한 코드와 청춘 코드가 부딪히면 분명 ‘재미’라는 스파크가 튈 것이라고 확신했다. ‘꽃보다 누나’ 역시 온실 속 여배우와 야생을 조합했는데, 당연히 재미있을 수밖에 없을 거라 굳게 확신했다.

100% 리얼리티인가, 어느 정도는 연출인가?

아예 연출이 없다면 그건 그냥 여행이지 방송 프로그램은 아니니까. 어쩌다 보니 그게 내 스타일로 자리 잡았는데, 대본도 없고 미션도 없지만, 보이지 않는 자극을 사이에 끼워 넣어 긴장감을 더한다. 그래서 내가 중간중간 등장하곤 하지. 어떤 말이 나오게끔, 현재 상황을 자기들이 알아서 설명하게끔 물꼬를 터주기 위해 옆에서 이렇게 저렇게 찔러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진심을 다해 열정을 쏟으면 정말 시청자도 좋아해줄까?

기본적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시청자도 관심 있을 것이고, 내가 좋아하는 건 시청자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건 분명 시청자도 싫어할 것이다. 분명 내 생각과 시청자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그 다른 부분까지 내가 다 포용해서 연출할 순 없다. 난 천재가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진심을 다해 만들어간다면 시청자들도 충분히 공감해주실 거라 믿는다.

아이디어가 항상 새로울 순 없지 않나. 어떻게 늘 새로울 수 있을까?

아이디어 뱅크일 것 같은 개그맨들이 늘 던지는 질문이다. 이미 다른 프로그램에서 한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으니 주어진 바탕 안에서 새롭게 만들라고. 김준현, 허경환, 김기열, 양상국이 출연했던 ‘네 가지’는 고전적인 스탠딩 개그 형식을 빌려왔다. 하지만 그들이 하니까 또 다른 맛을 줄 수 있다. 결국 소재 중복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연기로 표현하고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PD는 ‘연출’ 이외에도 ‘조직 관리’를 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발전을 위해 경쟁적인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간적인 관계도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스템이 운영될 수 없다. 몇 년 전 막내 개그맨의 어머니가 아프셔서 동료들이 모금을 한 적이 있는데, 무려 1천만원이 모였다. 후배가 어색해할까 봐 박성호가 흰 장갑을 끼고 나타나 근로장학금 수여식을 했다. 개그로 승화시킨 거지.

사회 풍자 개그는 ‘책임’을 수반한다.

‘개그콘서트’를 맡았을 때 사회적 책임을 느낄 정도로 위상이 올라가 이런저런 사정을 떠올리면서 자기 검열을 하게 됐다. 그런데 사실 이건 맞다, 아니다 같은 판단 기준을 우리가 가지면 안 되는 것 같다. 일단 사회가 개그라는 분야에서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창작하는 이들도 좀 더 폭넓고 다양한 것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천재성보다 중요한 게 의지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의지가 있어야 열정적으로 개그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살아온 배경 같은 후천적인 요인이 개그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용범
2002년 M.net 입사. ‘서인영의 카이스트’, ‘슈퍼스타 K1’ ‘슈퍼스타 K2’ ‘슈퍼스타 K3’ ‘댄싱 9’ 등을 연출.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아이디어는 대체로 어디서 찾나?

평소에 TV도 많이 보고 극장도 자주 다니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영상을 디테일하게 메모해둔다. 특히 사람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울컥하게 만드는 포인트는 놓치지 않고 체크한다. 영화 속 멋진 장면들도 프로그램 오프닝을 구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사실 PD도 직장인이다. 이 직업이 마음에 드나?

일반 직장인과는 조금 다르다. 보통은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PD에겐 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방송 시간에 맞춰 하루 스케줄을 짜니까 정말 정신이 없다. 시청자 반응도 중요하기 때문에 언제나 1초 대기조다. ‘슈퍼스타 K’를 맡았을 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녹화 테이프만 봐도 지친 적이 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데, 재미와 보람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특히 시청률이 잘
나오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조직 내 상하 관계나 인간관계가 어렵지는 않나?

사람마다 특징이 있다. 상하 관계를 잘 따르면서 새로운 걸 창조하는 사람이 있고, 단독으로 행동하는데 놀라운 성과물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중간 정도인 것 같다.

보통 회의는 어떻게 진행하나?

‘댄싱 9’을 기획할 때는 PD와 작가를 합쳐 매번 스무 명이 모여 회의를 했다. ‘슈퍼스타 K’ 때는 스물세 명. 사실 그 많은 인원을 통솔하기란 어렵다. 무엇보다 잘 들어주고 브레인스토밍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애쓴다.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보니 나만의 생각만 담을 수 없더라고. 신입부터 최고참의 의견까지 모두 차근차근 경청한다. 잘 들어야 잘 찾아낼 수 있는 법이다.

PD의 덕목은 무엇인가?

내게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다리는 연습. 사실 케이블 방송 쪽에 있다 보니 실패나 성공을 명확하게 가늠할 만한 프로그램을 많이 해보지는 못했다. 초창기엔 더 그랬다. 하지만 뭐가 됐든 기다리다 보면 자양분이 생긴다. 성급하게 판단하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는 귀를 여는 것. 승진할수록, 나이들수록 외롭지 않나. 그런데 귀는 오히려 닫힌다. 입만 열리는 거지. 그렇게 되면 소위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이게 생각보다 무서운 말이다. 현 세대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표현이니까.

일하면서 가장 힘든 때는 언제인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 때. 가끔씩 방송 후 예상하지 못한 논란이 터지기도 하는데, 이는 결국 PD가 최종 결정권자로서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기획, 촬영,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늘 시청자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준비하려고 노력해왔는데 그러한 상황이 생기면 스태프에게도, 회사에도 미안해지지.

신형관
1994년 동아TV 입사. 1997년 M.net으로 이적했으며 현재 평 PD 출신 최초 M.net 상무. ‘MAMA’ 등 국내 음악 프로그램의 다양한 변주와 대중화에 기여했다.

아티스트형 리더가 새로운 리더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와 함께 PD의 리더십도 주목받고 있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크리에이티브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이후 아티스트와 비즈니스 감성의 융합이 새로운 시대의 요구가 됐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아부도 창의적이어야 할 수 있는 거다. 비즈니스를 하든, 영업을 하든 창의적이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요즘은 연예인이 성공하는 방식이나 영업사원이 성공하는 방식, 또 PD가 성공하는 방식에 공통점이 굉장히 많아졌다. 조직원을 키울 때도 예전처럼 시켜서 하는 방식보다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키울까를 고민한다. 창의적 방식으로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 거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이런 동기부여가 없어 아무것도 안 하는 친구가 태반이다.

PD로서 창의적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

흔히 인문학에 답이 있다고 말하는데, 인문학은 책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을 만난다거나 하다못해 건담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도 인문학과 관련이 있다. 프라모델이 ‘참 정교하다’는 걸 새삼 발견해내는 것을 ‘안목’이라 부른다. 사람은 저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따라서 나침반처럼 삶의 방향도 다 다르다.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추친력은 끊임없는 동기 유발을 하는 것. 나에게 동기 유발의 원천은 음악이다. 음악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가끔 하는 방법인데 늘 듣던 노래 5백~6백곡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노래를 섞어 들어보면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하지.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읽고 음악도 많이 듣는 편인데, 아이디어는 번뜩이는 영감이라기보다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오래 생각하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김태호
2002년 MBC 입사. ‘섹션TV 연예통신’, ‘느낌표’ 등의 조연출을 거쳐 2006년부터 ‘무한도전’ 연출, 국내 리얼 버라이어티를 최초로 시작했다.

‘무한도전’의 생생한 캐릭터는 어떻게 만드나?

방송에서 보이는 캐릭터는 거의 본인 성격이다. 하지만 방송을 위한 캐릭터로 만들어나가려면 무엇보다 출연자 파악이 중요하다. 출연자의 속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상황을 거의 매일 체크한다. 그날 일어난 사건 사고, 그들의 심리 상태도 파악해야 하지. 사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게 중요하다. 촬영을 진행하는 데 큰 영향을 주니까. 출연자에게 좋은 일이 있다면 방송 소재로 이용할 수 있고. 그 반대로 출연자가 심적으로 힘들어한다면 녹화를 접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무한도전’은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의무가 있지만 굳이 출연자가 힘들고 지쳤는데 촬영을 무리하게 진행할 필요는 없다. 현실과 방송이 교묘하면서도 신기하게 녹아들어 캐릭터도 확실히 구축되는 거지. 나는 사실 PD라기보다 ‘무한도전’의 브랜드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연자들의 이미지도 관리해줘야 하니까. 가족이나 다름없다.

‘무한도전’은 다른 단어로 ‘아이디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연자들도 아이디어를 제안하나?

본인이 가장 잘하고 본인이 재미있으면 분명 시청자도 재밌어야 한다. 늘 이러한 철칙을 갖고 방송에 임한다. 그래서 출연자들이 원하는 아이템을 적극 반영한다. 그렇게 하면 책임감은 몇 배로 늘어나고 웃음 또한 몇 배로 커지겠지. 보통 편안한 분위기에서 촬영이 진행되니 뭔가 출연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먼저 다시 찍자고 제안한다. 그러고서 바로 그들만의 회의가 시작된다. 현장에서 즉석 코너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렇게 회의하는 모습을 촬영 분으로 만들기도 하고. 창조적인 즉흥성이 이렇게 발현된다. 그런 게 더 재밌고 반응도 좋다.

결국 방송을 위해 자발성과 순발력이 중요하겠구나.

코미디만 하던 사람들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힘들어한다. 코미디에는 기본적으로 대본이 있으니 그에 맞춰 리액션도 타이밍이 있다. 모두 알다시피 정형돈 씨가 방송 초기 순발력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씨의 경우 상황을 제시했을 때 연기로 풀어가려는 경향이 있고. 물론 ‘야유회’ 특집이나 ‘무한상사’처럼 대놓고 판을 짜서 상황극을 만들기도 한다.

캐릭터 사업처럼 콘텐츠를 사업화하는 고민 역시, 하고 있는 듯하다.

누가 ‘무한도전’ 연출을 맡아주겠다고 하면 나는 아예 캐릭터 사업만 전담하고 싶을 정도다. 이게 무궁무진한 영역이거든. 이미 ‘무한도전 캘린더’는 매년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나와 출연진, 스태프 그리고 시청자가 함께 만들어온 ‘무한도전’과의 추억은 영원할 테니 그러한 감성을 잘 담아낼 수 있었으면 한다.

지금은 PD들을 관리하는 입장에 있다. 관리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기다려주고 책임져주는 것. 프로야구를 봐도 아무리 잘하는 선수도 감독이 넣었다 뺐다 하면 2할도 못 치는 선수가 생기는 법이거든. 반대로 기회를 주면 3할 5푼 치는 선수도 나오곤 한다. 기회를 꾸준히 주면 그중에 잘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본인이 다른 PD들의 롤 모델인 것 같은데, 신형관 PD의 롤 모델은 누구인가?

만화 ‘북두신권’을 보면 주인공 겐시로가 대결을 할 때 자기랑 경쟁했던 선배들을 떠올린다. 롤모델은 하나가 아니다. 많다. 그렇지만 누구도 우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그걸 배우려고 노력하는 거다. 내 경우는 tvN에서 만난 ‘예능의 신’ 송창의 대표, M.net의 조용호 전무, 김종진 상무, 온미디어의 마케팅 전문가 등 모두가 롤 모델이다.

흔히 인생을 쇼에 비유하는데, 성공적인 쇼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쇼에도 ‘있어 보이는 쇼’가 있고 ‘없어 보이는 쇼’가 있다. 그 차이는 단 하나. ‘콘셉트’가 있느냐 없느냐다. 사실 콘셉트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다. 그걸 쇼를 통해 통일되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 콘셉트가 있는 ‘있어 보이는 쇼’다. 이를테면 2005년 MKMF의 콘셉트는 ‘연금술’이었다. 그래서 물, 불, 바람, 흙 같은 금을 만드는 요소라든가, 흑마술 요소 같은 것이 무대 위에서 일관되게 펼쳐졌다. 사실 똑같은 가수가 나오는 쇼라고 해도 콘셉트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완전 다르다. 우리네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기획=황보선 쎄씨 기자, 글=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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