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허리케인 늑장 대처 책임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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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얼굴) 미국 대통령은 13일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늑장 대처를 인정하고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고 말했다.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그는 "모든 차원의 정부 대응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며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잘됐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이 집권 5년 동안 '책임'을 언급한 경우는 처음이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바그다드에서 미군들이 연일 폭탄테러로 죽어가도 꿈쩍도 안 했다. 그래서 뉴욕 타임스는 이날 "부시의 발언은 카트리나가 그에게 얼마나 큰 타격을 입혔는지 입증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부시가 직접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은 위기 탈출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다. 잘못을 인정, 솔직한 대통령이란 이미지를 다시 가다듬자는 것이다. 미 언론은 '부시의 두뇌'라는 별명을 가진 칼 로브 등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뒤 부시의 발언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그래서 일부 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은 떨고 있다. 대통령이 책임지겠다는 것은 결국 문제 있는 관료들을 자르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장관의 경질설이 나온다. 재난 관리의 최고책임자인 그는 언론이 카트리나 피해를 집중 보도하자 "언론이 과장보도를 하고 있으며 연방정부는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해 빈축을 샀다. 부시는 이미 재난관리청(FEMA) 책임자를 교체했다. 자신의 선거운동을 도운 변호사 출신의 마이클 브라운 전 청장의 무능이 드러났고,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그를 자른 것이다. 새 청장에는 30년 경력의 소방관 출신인 데이비드 폴리슨(58) 전 소방청 청장을 임명했다. 1992년 허리케인 앤드루가 플로리다에 상륙했을 때 소방서장으로 구조활동을 한 인물로 재난관리 전문가다.

부시 대통령은 15일 루이지애나주를 또다시 방문한다. 네 번째다. 그는 연설을 통해 종합적인 복구대책을 제시할 방침이다. '카트리나 피해자 추모의 날'인 16일이 다가오기 전에 대국민 연설을 함으로써 비판여론을 좀 잠재워 보겠다는 의도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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