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대 - 북 갈등' 중재 나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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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4일 북한과의 갈등으로 위기에 처한 현대의 금강산 사업과 관련, "정부로서도 해야 할 몫이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기본적으로는 현대라는 기업과 북한 간의 사업 관계지만 정부의 희생과 지원,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사업인 만큼 북측과 협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정부의 입장은 민간 차원의 사업에 일일이 개입할 수 없다는 원론적 수준을 맴돌아 왔다. 이런 기존 입장을 뒤집고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정 장관은 제14차 장관급 회담장인 고려호텔의 프레스센터에 직접 내려와 작심한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평양 한복판에서 강력한 해결 의지를 밝힌 만큼 실제 회담 테이블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논의할지 관심을 모은다.

정 장관은 9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눈 대화부터 소개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남북화해와 경제협력의 상징이며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많은 사업인데, 국민의 걱정이 크고, 국제적인 시각이 우려스럽다"며 "장관이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틀 뒤 정 장관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을 따로 만났다. "어떻게 하면 (북한과 현대가) 한 발씩 양보해 정부가 중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현 회장이) 바로 그 다음날 인터넷에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바람에 정부의 조정.중재 여지가 상당히 줄었다"고 말했다. 현 회장이 현대그룹 홈페이지에 '국민 여러분께 올리는 글'을 올려 북한 측의 김윤규 전 부회장 복귀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데 대해 섭섭함을 표시한 것이다.

정 장관은 "지난 7월 16일 현정은 회장이 김윤규 부회장과 함께 김정일을 면담하고 개성.백두산 관광까지 협의했을 때 남쪽 국민들은 관광의 황금시대가 도래하리라는 희망과 기대를 가졌다"며 "두 달이 채 안 돼 그런 기대와 희망이 식어 어처구니가 없다"고 했다.

◆ 현대아산, 중재 기대=현대아산은 정 장관의 중재 의사를 반기는 분위기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통일부 장관의 중재로 현재의 어려운 상태가 수습되길 바랄 뿐"이라며 "정부의 노력에 맞춰 남북경협을 정상화시키는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아산 임원들은 13일 개성에서 북측과 개성 본 관광 실시를 위한 첫 실무접촉을 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와 낙심해 있었다. 개성 본 관광을 위한 다음 협상 일정도 잡지 않았다. 연내 두 차례 실시하기로 북측과 합의한 백두산 시범관광도 무산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 롯데관광 개성관광 사업 참여 어려워=롯데관광은 남북교류협력법상의 중복 금지 조항(17조 1항 3호)에 걸려 북으로부터 제의받은 개성관광사업의 정부 승인을 받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은 남북 경협의 승인 조건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는 협력사업과 심각한 경쟁을 유발할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평양=공동취재단, 이영렬.서승욱 기자

롯데그룹 "우린 개성관광과 무관"
롯데관광은 신 회장 매제 것

"롯데그룹은 개성 관광사업과 관계없습니다."

롯데그룹은 14일 이런 제목의 보도 자료를 냈다. 북한이 롯데관광에 개성 관광사업을 제의한 것과 관련, 롯데그룹이 개성 관광에 관련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롯데관광은 신격호(83)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신정희(59) 동화면세점 대표의 남편 김기병(67)씨가 운영하는 회사다. 롯데그룹은 "롯데관광은 롯데그룹 44개 계열사와 전혀 관계가 없는 독자적인 여행사"라며 "하지만 일부 언론에 롯데관광 보도와 관련해 롯데그룹 로고가 게재되고 '롯데 측'이라는 표현이 사용돼 롯데그룹이 오해를 받게 되는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1970년대 초반 롯데관광이 설립될 때 신 회장의 여동생이 회장에게 '도와달라'고 해서 '롯데'명칭과 로고를 쓰도록 허락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언론 보도 때'롯데관광'으로 표기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네티즌 "북한에 단호할 땐 단호해야"

현대의 대북사업과 관련, 네티즌들은 "현정은 회장이 소신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격려의 글을 쏟아냈다. 14일 인터넷 포털이나 언론사 사이트의 현 회장 관련 기사에는 현 회장을 응원하는 댓글이 수십 건씩 달렸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 '북청불장수'라는 아이디(ID)로 글을 올린 네티즌은 "현 회장이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에 대해 단호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블로그에서 '지지자'라는 네티즌은 "북한의 태도가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너무 원색적이라 어린아이 같다"고 말했다. 네이버에 글을 올린 'lcy2142'란 네티즌은 "북한이 현대 직원 인사 문제까지 관리하겠다는 것은 회사를 통째로 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kumbhmela'라는 네티즌은 "북한이 김윤규 사장을 싸고 도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북한과 김 사장의 관계에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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