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파일] 이거, 공무원이 기획한 애니 맞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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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손가락.발가락이 없이 태어난 꼬마 여자애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강아지의 둥그런 발을 보고 신기한 듯 한마디 한다. "어, 나랑 똑같네."

꼬마는 설움도 많이 당했다. 소위 '정상아'의 부모들은 아이를 괴물처럼 대했다. 버스와 택시는 휠체어를 탄 꼬마를 보고는 모르는 척 지나갔다. 게다가 유치원의 계단은 왜 그리 높은지….

단편 애니메이션 '낮잠'(감독 유진희)이 그리는 세상은 아련하다. 수채화처럼 맑은 그림에 장애아 소녀의 고단한 일상을 옮겨놓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이 작품은 각종 차별과 편견을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고발한다.

흔히 국가기관이 만든 작품은 예술과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사회주의든, 독재국가든 영화를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던 경우도 많다. 그러나 '별별 이야기'에는 관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일종의 역발상. 상업영화 이상의 독특한 상상력과 재기 넘치는 화면으로 한국 사회의 그늘을 들여다보고 있다.

2002년 '마리이야기'로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이성강 감독, 콕콕 찌르는 정치만평으로 유명한 박재동 화백, 그리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의 신예 감독까지 한국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재주꾼들이 함께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별별 이야기'는 모두 6편의 단편을 묶었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진흙을 이용한 클레이 애니메이션, 움직임 하나하나를 컴퓨터로 촬영하는 디지털 컷 아웃 애니메이션 등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기법도 두루 소개된다. 작지만 속은 꽉 차있다. 오프닝 타이틀과 함께 나오는 오방색 조각보처럼 '따로, 또 함께'의 세계를 정성스럽게 수놓고 있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를 떠올리게 하는 '동물농장'(권오성)은 양떼 속에 끼고 싶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는 염소를 주목한다. 무리에서 소외된 염소가 굵은 눈물을 흘리며 나무에 목을 매려는 장면이 왜 그리도 슬픈지. '그 여자네 집'(김준 등 5인)은 가사.육아에 매몰된 한 평범한 주부를 풍자한다. 끝이 없는 집안일에 그로기가 된 주부가 남편과 가재도구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대목에서 통쾌함을 느끼는 여성이 많을 법하다.

이애림 감독의 '육다골대녀(肉多骨大女)'도 재치 만점이다. 기골이 장대한 외모 때문에 쉽게 취업을 하지 못하는 한 여성의 가계도를 훑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혹독한 현실을 다룬 '자전거 여행'(이성강), 대입 준비에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고3 교실을 그린 '사람이 되거라'(박재동) 등 어느 하나 놓치기가 아깝다. 23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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