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국인 소유 땅 올해 67% 증가 기획부동산 통한 ‘묻지마 투기’ 성격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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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의 영동고속도로 장평 인터체인지(IC) 인근 야산 약 3000㎡(약 900평)는 중국인 소유다. 평창군청의 외국인 토지대장에 따르면 2012년부터 최근까지 중국인들이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씩 이 산을 사들였다. 고속도로와 인접하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개발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곳이다. 이 지역 부동산업자들은 ‘기획부동산’ 매매로 분석했다. 국내에선 투기 의도로 자주 활용되곤 하는 방식이다.

평창군 평창읍의 한 임야도 부동산개발업자의 ‘손길’이 닿았던 것으로 짐작됐다. 중국인 2명이 최근 이곳에 땅을 사 현관문 포장비닐도 그대로 남아 있는 5000만~6000만원짜리 조립식 주택 두 채를 세웠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직원은 “길이 연결돼 있지 않은 곳에 집을 지었다. 도로를 낼 수 있는 허가 절차를 잘 아는 전문업자가 개입된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중앙SUNDAY가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2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인들이 땅을 가장 많이 사들인 지역은 제주특별자치도(제주·서귀포시)와 강원도 평창·횡성군, 충북 청주시 상당구다. 이들 5개 지역에서 중국인들이 지난 3년간 매입한 토지 면적은 모두 643만8859㎡(약 195만 평)다. 법인이 아닌 개인이 산 땅은 대부분 임야지대다.

전국의 중국인 소유 땅은 2014년 9월 말 현재 11.97㎢(약 362만 평)다. 서울 여의도(8.4㎢)의 1.4배가 넘는 면적이다. 올들어 지난해보다 67% 늘었다. 한 부동산중개상은 “실제 땅을 보러 와서 사는 중국인은 없고 서울에서 업자를 통해 단체로 구입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차이나머니가 기획부동산을 타고 들어왔다는 뜻이다.

토지대장 확인 결과 평창군에서 최근 3년간 100건이 넘는 중국인 부동산 매입사례 가운데 90건 이상이 일정 지역에 몰린 기획부동산 거래 형태였다. 전문가들은 중국인들의 국내 부동산 투자의 상당 부분이 재산 은닉과 투기 목적인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중국 부동산가격이 계속 떨어져 돈을 굴리기가 쉽지 않고 중국 정부의 ‘부패 척결’ 캠페인 때문에 자칫 재산을 몰수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정진 KB금융지주 중국금융연구센터 연구원은 “중국 내 부유층은 은닉한 현금 재산이 많아 해외로 빼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가까운 한국 땅에 투자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인 추정과는 달리 중국인의 땅 매입은 ‘부동산 투자이민제’와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부동산 투자이민제는 국내 6개 지역의 여가시설에 5억원 이상 투자할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다.

이 제도 적용 대상인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2012년 초부터 최근까지 중국인의 분양건수는 4건에 불과했다. 평창군청 관계자는 “지역 내 중국인 토지 매입량이 리조트에 몰려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니 토지 매입 등 투자 용도가 더 많았다.

하지만 아직 투기적 수익을 낸 사례는 찾기 힘들다. 제주·강원도 등 현지 주민들은 중국인들이 산 땅에 대해 “투자가치가 별로 없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평창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주요 고속도로 진입로와 리조트 부근, 평창역 건설부지 일대 등에 개발 소재가 있지만 중국인들이 주로 땅을 산 곳은 대부분 평당 몇백원대에서 값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중국인의 국내 토지 보유 실태는 226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수집한 빅데이터를 근거로 분석했다. 데이터저널리즘에서 쓰이는 주요 기법을 활용했고, 여기서 도출된 새로운 데이터를 토대로 강원도와 제주도의 현장을 찾아가 취재했다. 상가 등 건물 소유분에 대해서는 지분을 반영했다.

평창·제주=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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