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5인의 지성에게 길을 묻다] 진보 교육감들, 서둘지 말고 작은 변화부터 끌어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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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호 11면

김춘식 기자

조희연(58) 서울시 교육감이 전성은(70·사진) 전 샛별중·거창고 교장을 만났다. 국내 최초의 대안학교인 거창고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중앙집권적 교육에서 벗어나 학교 자율형 교육으로 나아가야 학생들이 행복해진다고 줄곧 외쳐왔다.

② 전성은 전 샛별중·거창고 교장

 전 전 교장은 조 교육감에게 “교육 관료와 싸우지 말고 교육의 관료주의와 싸우라”고 조언했다. “학생 사이의 경쟁보다 학교 간, 지역 간 경쟁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이른바 ‘진보 교육감’ 전체를 향해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가라”고 당부했다.

 ▶조희연 교육감=선생님께서는 최근 수년 동안 학교와 교육, 교육정책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다는 내용의 책 3권(『왜 학교는 불행한가』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을 잇따라 내셨습니다. 어떤 문제의식에서 그런 진단을 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전성은 전 교장=역사는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억압에서 자유로, 착취에서 공존·상생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독점·국가통제 아래에서의 학교 교육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학교는 출세의 통로가 되고, 그렇게 출세한 사람들이 국가가 주도하는 반역사적 사건들을 기획하고 추진해오지 않았습니까.

 ▶조희연=사람들이 불행으로 이끄는 교육의 원인과 증상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설명을 좀 해주시죠.

 ▶전성은=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공통적으로 오늘날의 교육 문제는 인격 교육이 아닌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입시를 위한 지나친 경쟁과 사교육은 문제의 증상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원인은 국가 통제의 학교 교육입니다. 교육부는 국가로부터 독립돼야 합니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하면 임명권자의 철학·역사관·국가관에 맞는 교육을 하게 돼 있습니다.

 ▶조희연=교육부를 국가교육위원회와 같은 독립적인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전성은=교육부가 독립하고, 각 학교들에 교육 과정이나 평가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줘야 다양한 학교가 생겨납니다. 그래야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과 소양에 맞는 교육이 가능해집니다. 전국 단위로 아이들을 경쟁으로 몰아넣는 것은 교육적 범죄행위입니다.

도덕은 기성세대 언행이 교과서
▶조희연=경쟁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경쟁의 긍정적인 측면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성은=지역끼리, 학교끼리 경쟁해야 하는데 지금은 아이들끼리의 경쟁을 시키고 있습니다. 누가 더 잘 가르치느냐를 놓고 각 지역과 학교들이 경쟁해야 합니다.

 ▶조희연=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사회에 분노와 적의를 드러내는 청소년들이 많아졌습니다. 교육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고,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성은=‘지식’은 책이나 강의를 통해 얻지만 ‘가치’는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습득합니다. 기성세대의 행동을 듣고, 보고, 따라하게 됩니다. 아버지나 선생님이 사회에서 하는 것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없는 것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교사나 부모가 ‘고운 말을 써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고운 말을 쓰지 않는 한 소용 없는 일입니다.

 ▶조희연=6·4 지방선거로 저를 포함해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했습니다. 저희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전성은=얼마 전 박종훈 경남 교육감이 찾아왔을 때 ‘교육청에 팽배한 관료주의와 싸워야지 관료와 싸워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관료주의는 모든 조직에 다 있고, 모든 조직은 관료주의화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관료주의와의 싸움은 인류의 영원한 과제입니다.

 ▶조희연=교육청의 관료주의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성은=교육청에 독립된 평가 전문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이 기구가 교육청과 각 학교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상벌이나 예산 지원 연계와 무관하게 ‘컨설팅’의 개념으로 평가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아
▶조희연=‘진보 교육감’들은 교육의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전성은=너무 서두르지 말길 바랍니다.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 군대, 공무원 사회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한꺼번에 해치우는 것은 혁명입니다. 그런데 혁명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이 됐습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가십시오. 부모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작은 변화부터 이끌어내십시오.

 ▶조희연=선생님은 평소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교육’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어떤 교육을 의미합니까.

 ▶전성은=교육에서의 ‘사랑’은 힘이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섬기고, 도덕 수준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사들이 이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을 예뻐하고 싸움 일으키는 학생은 미워하는데, 이것을 거꾸로 해야 합니다.

이상언 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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