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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은산별신제 인간문화제-이어인 할머니(89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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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첫 치국을 잡으시니 경상도 경주는 진부대왕치국이요 두번을 잡으시니 전라도 전주는 공명왕의 치국이요 세번을 잡으시니 충청도 부여는 백제왕의 도입이요. 네번을 잡으시니 평안도 평양은 기지왕의 치국이요. 다섯번을 잡으시니 함경도 함흥은 단군의 치국이요 여섯번을 잡으시니 송도 송학사는 왕조대사 치국이요 일곱번을 잡으시니 지금 한강 이씨왕이 등극할 적에 5백년 도읍이면 무한령 치국이라…』
무형문화재 재9호로 지정된 은산별신제의 기능보유자 이어인할머니(89세)는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마디의 막힘도 없이 사설을 줄줄 읊어내린다.
은산별신제는 백제 광복 투쟁에서 중심역할을 한 복신장군과 토진대사를 비롯한 3천군병의 넋을 위로하는 일종의 위령제.전설에 의하면 옛날 은산지방에 전염병이 번져 사람이 많이 줄었는데, 마을 노인 꿈에 흰말을 탄 장군이 나타나 『위혼을 제사지내 주면 병을 쫓겠다』고 해 그때부터 별신당을 짓고 제사을 지냈다고 하는데,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이할머니가 은산별신제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7세때부터.그는 원래 무악사인 고인이동근씨와 무인 김씨를 부모로 대대로 세습돼온 무가의 장녀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굿판구경을 자주 했으나 전작 무가 사설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철이 든 다음이었다.
모친이 작고하자 간간이 부친의 지도를 받았으나 거의 무가 사설이 적힌 책을 보고 독학으로 깨쳐나갔다.
그가 별신굿을 주관하는 큰무당으로 데뷔(?)한 것은 34세가 되고서였다.열여덟에 결혼한 남편 최씨가 5년이란 짧은 결혼생활끝에 아들 하나만을 남기고 타개하자 평소 하고싶었던 빌신제에 뛰어들었던 것.
논1천평이 있어 먹고 사는데는 별 지장이 없었지만 어머니가 전부터 해오던 것이라는데 크게 애착이 갔다는 설명이다.
『지금 생각해도 장 겁이 없었나베. 처음 「쥔」 으로 행세하면서도 전혀 떨리거나 두렵지가 않았으니 말이유. 』 첫굿판을 끝내고 내려오니 만족하신둣 아버지가 빙긋이 웃더라면서 잠시 감회에 젖는다.
그때부터 반세기가 넘도록 별신굿을 해왔지만 사설이 막히거나 틀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3년에 한차례 별신굿을 하고나면 온몸은 땀범벅이 되고 몇날은 드러누워야할 정도로 몸이 지치지만『좋으나 궂으나 내게 당한 일』이란 생각에 단 한번도 거른 적이 없었단다.
이할머니의 은산별신제에 얽힌 추억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 66년 서울 덕수궁에서 열렸던 문화예술단체 주관 민속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받은 것. 금의환향하는 날 온 주민이 축하잔치를 벌여주며 기뻐하던 것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온마을 주민이 축하>
『서울가서 1등 못하면 한강물에 빠져 죽으려 했으유.수백명을 데리고 간 내꼴도 우습게 되지만 은산별신을 욕뵈는 짓이 아니유,』그는 다음해 열린 대구대회에서 2등밖에 되지 못했다 하여 밥을 사흘이나 굶을 정도로 은산별신제에 대한 애착이 지극하다.
술은 입에 대지 않고 담배를 약간 피우는데 소식이 건강의 비결인 것 같다고 넌지시 일러도.
아홉살때 은산에서 지금의 충남부여군규암면규암리150 자택으로 이사온 이래 단 한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고 살아온 그는 집을 비우는 일은 거의 없고 수년에 한번 대전·서울 등에 사는 친지를 방문하는 것이 유일한 나들이.
문화재관리국에서 지급하는 월20만원의 보조금이 유일한 수입원으로 아들 내외와 함께 생활해 오고 있는 그는『먹고 사는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1평이 넘을까 말까한 작은 방에 민속경연대회 공로상장과 인간문화재 지정장을 액자에 걸어두었는데『며느리의 효성이 지극해 군에서 효부상을 주었다』고 은근히 며느리 자랑도 잊지않는다.
이할머니에게 있어 현재 가장 큰 고민거리는 확고한 전수생이 없다는 것. 죽은 후에도 은산별신이 잘 되길 바란다는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 걱정이라면서도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고 선별의 까다로움을 내비친다.
그가 유일하게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은 친손녀인 매순양. 15세때부터 그의 지도를 받아온 매순양은 국립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금년에 중앙대예대 무용과에 진학,후계자로서의 발판을 다져가고 있다.
『3년에 한번 별신이 돌아오니까 내년이 별신이로구먼.그때까지 살아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엊그제 원삼이랑 고깔을 바느질집에 갖다 맡겼지』
『돈도 명예도 다 필요없고 다시 젊어지는 것만이 소원』 이라는 이할머니는 다시금 사설을 되뇐다.

<젊어지는것이 소원>
『우리 조선이 삼백육십전 백판지 후의 거기 병기 떨어져서 어디간줄 몰랐더니 수양 능수로 생기고 필둑 고병터가 생겨 있고 아반산을 둘러보니 놀란 몸에 뛰나는 듯 뒤어 뒤산 바라보니 서라부서 집이나고 여번산을 바라보니 관우 장비가 높고 낮고 사방산세 물세를 볼작시면 경상도태백산은 낙동강이 수구를 막고 강원도 금강산은 임진강이 수구를 막고 서울 삼각산은 동젓강이 수구를 막고 공주 계룡산을 보면 백마강이 수구를 막고 문필봉이 비쳤으니 문상 재상이 날 것이 요누인봉이 비쳤으니 대대전수가 날것이요 장자봉이 비쳤으니 거부장자가 날 것이라』<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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