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독신아파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신선미 넘치는 젊은이의 안식처-최근 직장미혼남녀를 위한 독신아파트가 늘고 있다. 삼성·현대 등 대기업과 상업·조흥은행 등 금융기관, 공단주변의 중·소기업체에서 사원복지의 하나로 설립한 독신자아파트는 지방출신 미혼남녀에게 인기가 높다. 젊은 입주자들은 자발적인 운영회 등 모임을 조직, 활발한 유대를 보이고 있어 이웃을 모르고 단절된 생활을 하기쉬운 일반 아파트와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자취나 하숙생활을 하는 미혼사원들이 자칫 탈선하기 쉬운데 비해 독신아파트는 기숙사에서 진일보한 금남·금녀의 성역으로 건전한 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 2평남짓에서 11평까지 갖가지 축소형인 이들 아파트는 저렴한 임대로와 아담한 침실, 우수한 복지시설이 젊은이의 구미에 맞아 떨어진다.
서울영등포동에 우뚝솟은 금남의 요새 청소년 복지아파르수위실 남자경비원 3명만이 출입의 특권을 누릴뿐이다.
영등포역일대 83개 중·소업체 생산직 여성근로자 1천여명이 11평형(1실5인) 2백가구에서 생활하고 있다. 연건평 3천여평, 5층 5동의 회색군단.
1인당 보증금 8천원, 1개월 4천원의 임대료만 내고 있다. 다른 독신자아파트가 1개회사 전용인데 비해 많은 업체사원들이 입주한게 특징. 서울시가 지은 것은 각기업체가 임대하는 형식으로 사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영등포동일대에서 자취를 하던 여성근로자들이 이곳을 찾은 것은 아파트가 완공된 지난해 4월. 하나둘 모여든 독신여성 입주신청자가 넘쳐 지금은 공급이 수요를 못미칠 정도.
20대초반의 연령층인 이들 근로자들은 서로 직장은 달라도 한 울타리라는 소속감에서 각종 취미활동이 활발해 옛날 철새처럼 방황하던 여성근로자의 인상을 씻고있다.
『옛날과는 달라요. 학력수준도 높아졌을 뿐더러 취미생활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청소년 복지회관에서 여성근로자의 취미활동을 도와온 관리계장 홍봉일씨(47)의 말이다.
일요일인 6일 하오 3시. 『하나둘, 하나둘』 경쾌한 디스코리듬과 지도교사의 구령에 맞춰 몸을 흔든다. 에어로빅반의 체조광경. 취미활동으로 이 단체를 조직한 것은 지난해 6월. 회원은 현재 1백명이다.
『춤을 추고 나면 지난 l주일의 피로가 싹 가시는 것같아요.』-김모양(25·K방직생산부)은 이마에 맷힌 땀을 씻으며 말했다. 김양과 함께 방을 쓰는 울산출신의 우모양(24·S무역)은 회사기숙사에서 지난해 이곳으로 온 직장경력 6년째의 고참.
『애인은 커녕 방학이 되어 찾아온 남동생도 방에 한 발자국 들여 놓지 못한다』며 우양은 엄격한 규칙에 애교스런 불평을 늘어 놓는다.
이들의 출퇴근은 3교대로 생활은 불규칙한 편. 그러나 여성의 소양을 쌓으려는 이들의 의지는 대단해 에어로빅반, 탈춤반, 사진반, 합창반, 테니스반, 문학반 등 10여개 서클에 회원만도 3백여명에 이른다.
『딩, 동, 뎅』. 서울서초동 삼성생활관의 새벽 6시. 어김없이 울려대는 기상 벨이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지난달 29일 문을 연 삼성생활관은 3백40여명이 입주해있는 금녀지대. 3∼5평 남짓한 이 독신아파트는 보증금없이 월당 소정료(l인용 8만원, 2인용 6만원)만 지불하고 있다.
여성아파트와는 달리 이곳엔 공동식당이 있어 취사의 번거로움을 덜고 있다.
금녀의 성이지만 때로는 용기있는 여성들이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생일이면 케익, 재떨이를 들고와 결혼의 기득권을 공공연히 내세우기도 한다.
대구출신의 박모씨(27·삼성물산)는 벌써 양처의 솜씨를 발휘하는 애인이 있어 즐겁기만하다. 토요일엔 애인이 찾아와 옷다림질을 해주는 등 사랑의 정성을 보인다. 박씨와 함께 방을 쓰는 같은 고향의 오모씨(27·삼성물산)는 박씨의 애인이 찾아오자 슬며시 자리를 피한다.
토요일, 이 독신성역엔 많은 여자가 찾아오고 밤늦게 아파트 주변에서는 헤어지기 싫어하는 젊은 아베크군(군)의 정겨운 모습은 독신아파트가 빚어낸 새로운 사랑의 풍속도다.
직장일을 마친뒤 돌아온 이들 독신남들은 세탁하랴, TV보랴, 담소하랴, 바쁘기만 하다.
『독신아파트는 복지시설이 비교적 잘되고, 편리해 결혼의 필요성을 못느껴요.』 부산출신의 유모씨(28·한국반도체통신)의 말.
전남 광주출신의 이종상씨(26·종합건설)는 지난해 입사, 하숙생활을 하다 이곳에 왔다며 『남자들끼리 생활하니 건조한 맛도 있지만 회사생활을 얘기하고, 공동의식을 기를수 있어 좋다』고 했다.
1백여개 침실에 2백여명이 입주해 있는 서울 서초동 상업은행생활관. 총각냄새 물씬 풍기는 철저한 금녀의 집인 이곳은 1인당 보증금 3만원, 1개월 2만원의 임대료를 낸다. 규칙은 엄정한 편이어서 자정이면 문이 닫히고 여자는 커녕 남자친구도 얼씬 할수 없다.
경기도 의정부출신의 이선재씨(28)는 『술을 마시다보니 늦어 철책을 넘는 드릴을 맛본 일도 있다』고 했다. 때로는 규칙을 위반, 쫓겨 나가는 경우도 있다. 관리실에 근무하는 박모씨(27)는 『남자친구와 함께 잠을 잤는데도 발각돼 퇴실명령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이밖에 현대그룹은 서울압구정동에 4백55가구, 울산에 3천가구의 독신아파트(7평규모)를 지어 그룹사원을 입주시켰다. 비용은 월4만9천5백원(서울의 경우)을 내고 공동식당과 목욕실 등을 갖추고 있다.
한국비료도 1백여명이 입주할수 있는 독신자 아파트를 지어 미혼사원들에게 무료제공하고 있다. <방원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