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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전 총리 '장외'서 차기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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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고건 전 총리(右)와 심대평 충남지사가 1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피플 퍼스트 아카데미’ 주최 심포지엄에서 손을 맞잡고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외(場外)의 강자인 고건 전 총리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고 전 총리는 12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피플 퍼스트 아카데미(PFA) 설립 기념 심포지엄에 모습을 나타냈다. PFA는 심대평 충남지사가 추진하고 있는 '중부권 신당'의 싱크탱크를 표방하는 단체다.

고 전 총리는 지난해 퇴임 이후 단 한번도 정치 행사에는 간 적이 없다. 그래서 신당 모임에 그의 모습이 등장하자 정치권에선 민감한 파장이 일고 있다.

신당 창당 추진을 공식 선포하는 자리이기도 했던 이날 행사엔 심 지사와 무소속 정진석, 류근찬 의원 등 신당 측 인사를 비롯해 민주당 한화갑 대표, 최인기 의원 및 열린우리당의 신중식 의원, 무소속 신국환 의원 등 원내외 정치권 인사 다수가 참석했다. 고 전 총리는 기자들이 몰려들자 "심 지사와는 예전에 시.도지사 협의회에 같이 참석했기 때문에 친분이 있다. 심 지사가 연구소를 연다고 해서 축하차 왔다.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인터뷰를 사양해 왔다"며 입을 닫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고 전 총리가 단순히 축하 인사차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당초 고 전 총리는 공연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주변의 의견에 따라 심포지엄에 화환만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다 막판에 고 전 총리가 마음을 바꾼 것은 최근의 정국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고 전 총리와 가까운 한 정치권 인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연정 드라이브를 걸면서 정치권의 개편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 정치권에 지분이 없는 그로선 유동적인 정치 환경에 대처할 최소한의 기반이 필요하다"며 외빈으로 신당 창당 모임에 참석한 배경을 분석했다.

지금 정치권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강 체제지만 차기 대선 구도도 그렇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실제로 1987년 이후 역대 대선은 항상 3자 구도였다. '양강'의 견제를 뚫고 고 전 총리가 장내(場內)에 안착하기 위해선 그가 '중부권 신당'과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호남 지역 의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고 전 총리가 충청권에 연고가 있는 '중부권 신당'의 지원마저 얻는다면 '제2의 DJP연합'(호남-충청 지역연합)의 대표선수로 부상하는 게 허황되지만은 않다.

이와 관련, 여론조사기관 R&R이 8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선에서 고 전 총리(29.8%)가 민주당 후보로 나오고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대표(27.4%)가, 열린우리당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12.9%)이 3자 대결할 경우 고 전 총리가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후보로 이명박 서울시장(26.0%)을 대입해도 고 전 총리(32.6%)는 1위였다. 3자 구도도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한편 포스트 JP를 노리는 심 지사는 이날 축사를 통해 "평생 공직에 몸담았던 제가 새로운 정치 결사체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은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라며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에 공감하는 현역 의원 및 건전한 정치세력들과 함께 11월 중에 신당의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갑 대표도 축사에서 심 지사가 내세우는 '지역분권형 정당모델'에 지지 의사를 보내고 "(심 지사가)정치적 줄기세포를 만들어 달라"며 의미심장한 주문을 했다. 신당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중부권 신당'이 충청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민주당이 호남에서 약진한다면 고 전 총리가 이 두 정치세력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하면서 정치권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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