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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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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의 별명은 헨진(變人)이다. 괴짜나 이상한 사람이라는, 별로 좋지 못한 뜻이다. 10선 관록치고는 경력도 보잘것 없다. 자민당 간사장이나 대장상.외상은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다. 후생상이나 우정상 같은 한직을 맴돌았다. 그는 최초로 파마를 하고 의사당에 나타났고, 정치인 최고의 영예인 중의원 25년 근속 표창과 특전을 걷어찬 인물이다.

일본 정치판에서 대수회(大樹會)를 모르면 간첩이다. 회원 24만 명의 전국 우체국장 출신들이 만든 압력단체다. 지역 유지의 모임이자 자민당의 최대 표밭이다. 그는 이런 대수회를 대수롭지 않게 잘랐다. "우정성 산하 공무원 26만 명보다 일본 국민 1억 명이 더 중요하다"며 우정 민영화를 밀어붙였다. 그가 바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다.

일본 정계에서 힘을 쓰려면 파벌과 고급 요정 출입은 불문율이다. 그는 그 시간에 혼자 책을 읽거나 유럽여행을 즐긴다. 이혼 뒤 23년간의 독신 생활이 몸에 배어 밥도 손수 짓는다. 말투는 어눌하고 연설은 5분을 넘지 않는다. 이번 총선에 방송사 여성 앵커 등 미모의 여자 자객을 공천한 이유도 간단했다. "아름다운 여자의 눈물만큼 강력한 무기는 없다"고.

정치판에선 괴짜로 따돌림받지만 그는 국민 사이에선 정치판을 뒤엎을 유일한 희망이다. 그의 대중적 인기는 여기에서 나온다. 그의 유세장에는 투표권도 없는 중.고생까지 몰려와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댄다. 도쿄(東京)자민당사 1층에는 그의 캐릭터 상품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다. 인형이 달린 7000원짜리 휴대전화 줄과 얼굴 사진이 담긴 1만2000원짜리 티셔츠는 인기 상품이다.

그제 고이즈미 광풍이 일본 열도를 휩쓸었다. 일본 최초의 '대통령급 총리'로 등극했다. 그러나 주변국은 불안하다. 1991년 미국의 댄 퀘일 부통령이 미군 경비를 거론하자 그는 "나갈 테면 나가라"고 쏘아붙였다. 주일 미군이 나가야 자주 방위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고이즈미식 외교는 늘 이런 식이다. 혼자 고민하고 파격적 결단을 즐겨 '외로운 늑대'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좋은 의미에서 고독한 승부사지만, 옆에서 보면 독불장군이 날개를 단 격이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