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 아부지 참 힘드셨지" …'국제시장'에 우는 아버지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번엔 아버지 차례다. 노부부의 절절한 사랑을 그린 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의 흥행 열풍을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로 가득 찬 극영화 ‘국제시장’(17일 개봉, 윤제균 감독)이 이어받았다. ‘국제시장’은 개봉 둘째 날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호빗:다섯 군대 전투’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더니, 개봉 8일 만인 24일 200만 관객을 훌쩍 넘어섰다. 지금까지의 흥행속도만 비교하면 2012년 1000만 관객을 모은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비슷하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제시장’과 함께 숨 가빴던 한국의 현대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6·25전쟁 당시의 흥남 철수에서부터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전 참전, 이산가족 찾기 등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전쟁 피란길에 아버지와 헤어지면서 때 이르게 가장 노릇을 하게 된 남자 덕수(황정민). 그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 영화에서 재현한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며 눈물과 웃음을 빚어내게 한다.

윤제균 감독

 ◆중장년층의 큰 호응 이끌어내=흔히 영화 흥행은 20대 관객이 먼저 불을 붙이고, 여기에 중장년층이 가세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국제시장’은 개봉 초기임에도 중장년 관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멀티플렉스 CGV가 회원을 대상으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 영화의 관객은 연령별로 40대 이상이 34.5%(23일 기준)나 된다. 20대는 33.9%, 30대는 26.9%다. ‘님아’만 해도 같은 집계에서 20대(41.5%) 관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과 대비된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현재의 중장년층은 스크린 속에서 늘 희생한 세대로 그려졌다”며 “이들이 지금 노인이 된 자신의 아버지 세대 이야기를 보며 ‘나 또한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내게도 저런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덕수처럼 험난한 시대를 살아왔던 관객들이 공감할 대목도 많다. 영화평론가 김형석씨는 “주인공 덕수와 비교적 가까운 세대의 관객들은 마치 자신에게 바쳐지는 헌사와도 같은 이 영화를 보며 향수에 젖기도 하고 위로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정치적 휴먼드라마의 힘=‘국제시장’은 우리 현대사의 실제 사건을 여럿 다루고 있지만 정치적 이슈나 시각은 배제했다. 최근의 굵직한 흥행작들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삼은 ‘변호인’이나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그린 ‘명량’처럼 정치적·사회적 흐름과 맞물려 1000만 관객을 넘어섰던 것과는 좀 다르다. “사회성 짙은 영화가 주는 부담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마음껏 웃고 울 수 있는 휴먼 드라마에 대한 갈구가 커진 때에 이 영화가 나왔다”(강유정)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윤제균(45) 감독은 “영화에 내 정치적 입장을 녹일 수도 있었겠지만 철저히 걷어냈다”며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는 가난한 시절 정말 고생했던 부모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덕에 ‘국제시장’은 웃음과 눈물을 적절히 버무려 감동을 주는 휴먼 드라마로 나왔다. 1000만 관객을 모은 ‘해운대’(2009년)를 만든 윤제균 감독의 힘이기도 하다. 윤 감독은 “일이 잘 안 풀리던 어느 날 혼자 앉아있는데 너무 눈물이 났다. 우리 아버지도 참 힘드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덕수는 내 아버지 이름에서 따왔다. 물론 실제 경험을 녹인 것은 아니다. 젊은 관객들이 부모님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주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