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나도 주인공! 책 속을 누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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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팬터지 바람을 타고 어린이 책에도 '가상체험' 붐이 불고 있다. 명작.역사서 등에 또 한 명의 새로운 주인공이 들어가 책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어린이(독자)가 새 주인공과 자신을 같은 인물로 느끼게 하며 책 속에 푹 빠져들게 하겠다는 의도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팬터지 코드는 새 주인공이 책 속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더해진다.

'우당탕탕 명작여행' 시리즈(6권까지 출간, 토니 애버트 지음, 이나경 옮김, 문학수첩리틀북, 각 권 210쪽 내외, 각 권 6500원)는 '톰 소여의 모험''로미오와 줄리엣' 등 잘 알려진 명작을 21세기 아이들인 데빈과 프랜키의 여행을 통해 들려준다. '책만 보면 뇌가 녹아내릴 정도로' 독서를 싫어하는 데빈과 프랜키가 책 세계로 통하는 문인 '재퍼 게이트'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설정이다. 이들은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말도 시키고 간섭도 하지만, 원작의 뼈대는 바뀌지 않는다.

문학수첩의 김병호 팀장은 "이런 설정은 원작과 읽는이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다. 어린이도 수동적인 독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인 주인공으로 변모한다"고 말했다.

요즘 아이들의 눈으로 재해석해내는 만큼 현대적인 가치관도 반영된다. 시리즈 2권인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이 프랜키에게 악당의 이름을 '인디언 조'라고 소개하자, 프랜키가 점잖게 한마디 한다. "인디언이란 표현 대신에 '아메리카 원주민'이란 말을 써야 해. 사람을 인종에 따라 구분해 부르는 건 좋지 않아." 그래서 그 뒤부터 '냄새 나는 조'로 이름이 바뀐다.

스테디셀러인 '마법의 시간여행' 시리즈(32권까지 출간, 메리 폽 어즈번 지음, 노은정 옮김, 비룡소, 각 권 100쪽 내외, 각 권 6500 ~ 7000원)는 잭과 애니 남매의 모험을 통해 풀어가는 역사.과학 학습동화다. 숲 속 나무꼭대기 오두막집에서 책을 펼쳐들고 주문을 외우면 오두막집이 타임머신으로 변하며 아이들을 책 속으로 옮겨준다. 이들은 백악기로 날아가 티라노사우루스에 쫓기기도 하고,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도 목격한다. 모험 속에 지식이 녹아있는 꼴이다.

최근엔 국내 역사책에도 같은 기법을 사용한 책이 나왔다. '한국사탐험대' 시리즈(2권까지 출간, 손호정 등 지음, 웅진주니어, 각 권 110쪽 내외, 각 권 9000원)에선 다섯 명의 초등학생이 지하철 경복궁역에 있는 모형 불로문을 통과하며 역사여행을 떠난다. 웅진주니어 김향금 실장은 "딱딱한 지식을 재미있게 포장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구성이 산만해지거나 지나치게 압축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의 한이옥 팀장은 "명작(원작)의 수려한 표현기법 등이 훼손될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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