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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법관은 되지않겠다|최장수「20년대법관」…이영섭전대법원장에 듣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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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법관지망생을 만날때마다 일단 만류부터 합니다. 법관은 가난하고 고독한 성직입니다. 일반인들이 화려하게만 생각하는 명예도 재산도 전혀 보장되지 않는「사양기업」이 바로 우리나라의 법조인이지요.』
30년의 법관생활중 20년을 대법원판사로 지낸「화려한 경력」의 이영섭전 대법원장(63·변호사)은 첫마디부터 법관은 결코 좋은 직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법원판사20년」은 이변호사가 가진 전무후무한 기록. 관계법에 따라 앞으로도 영원히깨질수 없다. 더구나 법조인 최고의 영예인 대법원장까지 지낸 이변호사는 서슴없이『다시 태어난다면 법관을 택하지 않겠다』고 했다.
서울을지로6가 서울운동장맞은편 3평정도의 조그마한 그의 사무실은 책상과 법률서적이 가득한 책장·응접세트가 비좁게 차지하고 있다. 벽에 걸린 남농의 산수화가 유일한 장식품이다.
『사건이 거의 없어요. 후배 법관들 보기가 민망스러워 법정에 나다니지 못하고 상고이유서나 더러 작성하는게 고작이지요』
사무실 유지비도 제대로 안되고 월70만∼80만원의 차량유지비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연금을 받았으면 월72만원쯤 될텐데 퇴직금 5천만원쯤을 일시불로 받아 은행에 넣고 보니 금리가 내려 월30여만원밖에 이자를 못 받는다고 아쉬워했다.
-우수한 학생들이 거의 법대·법관을 지망하고 있는데….
▲국가적으로 큰 손실입니다. 법관은 중간성적정도의 정상인이면 누구나 해낼 수 있어요.구술시험처럼 그 자리에서 대답하는 업무도 아니고…. 모르면 책을 찾아보며 재판하면 되지요. 우수한 머리보다 성실한 자세, 소신있는 판단이 필요한 직업이지요.
우수한 두뇌는 무궁무진한 자연과학분야나 창조·창의력이 요구되는 인문과학분야로 진출하는게 바람직합니다.
-과거에는「고시합격=인간보증수표」이지 않았습니까. 여러 가지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가정·사회·학교 우리모두의 책임이지요. 일제시대 또는 그 이전의 관존민비사고의 잔재이기도 하고….
저는 선친의 「명령」에 따라 법관이 되고 말았어요. 한번도「아버지」라고 불러보지 못할 만큼 무서웠던 분이라 개성·적성따위는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지요. 이젠 시대상황이 바뀌었는데도 고루한 의식은 계속 남아있으니 큰일이지요.
-고시합격이 입신의 지름길이 아닙니까. 생활보장도 되고 명예도 얻고….
▲법관으로 입신하려는 사람은 오래 법관직을 지탱 못하는 법이지요. 생활보장도 다른 직장보다 나을게 뭐 있습니까.
제가 초임법관시절 생활고를 못 견디고 당시 김병노대법원장님께 사표를 낸 적이 있습니다. 일본군화를 신고 차비가 아까와 신설동에서 매일 걸어서 출퇴근했어요.
지금 변호사도30∼40%정도나 그런대로 유지되고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허덕거립니다. 앞으로 1년에 3백명씩 배출되면 결과는 자명하지요. 분명히 말해 법조인은 사양기업입니다.
-그래도 법조인으로서의 긍지와 보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명예와 다릅니다. 재동생(이웅섭씨)과 가끔 고향인 양주에 가는데 동네어른들이의사인 동생에게만 들려 진찰을 받으려 하는 것을 보고 「법학은 역시 공허한 학문」임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한 검사는 법학을 「국회의원이 손한번 들면 휴지가 되는 학문」이라고 혹평하기도 했지요.
-외국에서도 법관은 우수한 인재들 아닙니까.
▲일본의 관료주의가 대표적이고 미국의 법과대학도 비교적 고급두뇌들이 모이더군요. 그러나 유럽쪽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독일의 유명한 어느 형법학자는 법학을 「방의 과학」이라고 했어요.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이 전공을 정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왜 법학을 택했느냐고 묻자 『본래는 신학이나 철학을 전공하려 했는데 마침 네 어머니와 연애를 시작해 결혼을 위해서는 빵이 필요하기 때문에 법학을 택했다』고 설명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측근에도 법관지망생이 많을텐데 그들에게 뭐라고 이끌어 주시는지요.
▲제 큰 아들이 서울대법대를 나왔어요. 몇 년 말렸지만 고시를 치다 실패하더니 은행에 취직해서 잘 다녀요. 생질놈은 아버지도 법조인(이변호사의 매부가 임병옥변호사)인데 경영학을 택하더군요. 외삼촌인 제가 잘했다고 거듭 칭찬을 해줬더니 어머니인 저의 누이동생이오히려 섭섭해하더군요
저는 사법연수원에 강의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고생문이 훤한데 뭣하러 왔느냐」는말부터 시작합니다.
-30년을 법관으로 지내셨으니「법관직」에 대한 판결을 해보시지요.
▲법관직은 바로 고생줄입니다. 본인은 좋아서 택했다치고 그 가족이 불쌍합니다.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주로 법관직을 택하지요. 재미없고 무취미한 성격이 대부분입니다. 법조인이 각광받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젊은이들이 법관직에 대해 무슨 환상이나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법관이 되면「수가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수가 나면 바로 비리입니다.
-지난해 지체부자유법관 탈락문제로 떠들썩한 적이 있었는데….
▲법원의 주장도 일리는 있지요. 재판이란 반드시 승패가 있어 패자는 불신하기 마련이어서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법부가 현명하게 잘처리했다고 봅니다.
-올해 들어 사법부가 침체일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재야법조인으로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가슴 아픈일이랄 뿐 무슨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사법부가 약화되는 것이 결코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변호사 개업1년이 됐는데 사건수임을 하면서 느끼신 점은 없습니까.
▲제가 맡은사건중 대법원에서 패소한 민사사건이 있었어요. 하루는 당사자가 찾아와『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기록만으로 어떻게 이기느냐. 대법원장을 지냈다기에 판사들을 찾아다닐줄 알고 선임했더니 실망했다』고 호통을 치더군요. 국민들이 사법부를 이런 식으로 봐주니 큰일입니다.
(이변호사는 퇴임 21개월만에 흰머리와 주름살이 눈에 띄게 늘어 있었다. 특히 퇴임직후에는 안면근육마비로 크게 고생을 했다며 아직도 완쾌되지 않아 왼쪽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안경속으로 계속 눈물을 닦아내야만 했다.) <권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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