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선고 1시간 전 표결해 8대 1 … 재판관들 30분 전에야 결과 알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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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 상실을 선고했다. 헌정사상 첫 정당해산 결정이었다. 그런데 ‘8대 1’의 결과는 재판관들조차 결정 선고 30분 전까지 알지 못했던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평결 결과가 새 나갈까 우려해 선고 한 시간 전에 9명의 재판관만이 참석한 가운데 최종 표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헌재의 한 관계자는 23일 “그동안 평의 과정을 통해 재판관들은 누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감(感)은 잡고 있었으나 실제 결과를 안 건 선고 30분 전 공식 표결 결과가 나온 직후”라고 말했다. 헌재 등에 따르면 이 사건과 관련해 헌재는 마지막 공개변론(11월 25일)을 포함해 모두 18차례의 변론기일을 열었다. 재판관 평의(評議)도 30여 차례 가졌다고 한다.

 마지막 평의는 선고 이틀 전인 지난 17일 열렸다. 통상 마지막 평의 전에 결정문 작성이 마무리되고, 마지막 평의에서 재판관 각자의 의견을 구두로 밝히는 표결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날 평의에선 통진당을 해산해 달라는 법무부 청구에 대한 인용 여부 표결은 진행되지 않았다.

 박한철(사진) 헌재 소장 등 재판관들이 워낙 정치적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사안이란 점에서 평결 결과가 사전에 흘러나갈 경우 불필요한 억측이 나오고 그로 인한 혼란도 클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공식 표결 절차는 선고 당일 오전 9시부터 별도로 진행하기로 결정됐다고 한다.

 이에 따라 박 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9명은 19일 결정 선고(오전 10시) 한 시간 전에 다시 모여 30여 분간 공식 표결을 실시했다. 표결은 이정미 주심 재판관이 먼저 자신의 의견을 구두로 제시한 뒤 가장 최근에 임명된 조용호 재판관부터 의견을 밝혀 나갔다. 마지막은 박 소장이었다. 그 결과 8대 1의 결과가 나왔고, 이런 결론이 적힌 결정문에 재판관들이 도장을 찍으면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공식 표결이 선고 직전에 이뤄졌다면 결정문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헌재 관계자는 “다수 의견, 소수 의견, 보충 의견 등으로 이뤄진 여러 개의 결정문을 미리 준비했다가 평결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헌재 재판관을 지낸 A변호사는 “방송법·언론법의 경우 쟁점이 10개가 넘는 등 헌재 사건은 쟁점이 복잡한 게 많다”며 “이번 사건은 인용과 기각 의견을 6대 3 이상, 5대 4 이하로 구분해 사전에 결정문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헌재 주변에선 인용 결정문과 기각 결정문 등 2개를 만들어 놓고 평결 결과가 나온 뒤 공란으로 돼 있던 주문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결정문을 완성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A변호사는 “선고 당일 표결을 했다는 건 결정이 그날 됐다는 뜻이 아니라 최종적인 의견 표시를 그날 했다는 의미일 것”이라며 “그만큼 보안이 철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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