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최고 존엄' 지키려다 부메랑 맞은 북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다룬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 ‘인터뷰’로 촉발된 갈등이 미국과 북한 간 ‘사이버전(戰)’으로 번졌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북한 대 소니픽처스(영화제작사)로 맞선 갈등의 주체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와 김정은 정권의 정부 대 정부 대결로 커졌다.

 분기점은 소니픽처스의 ‘인터뷰’ 개봉 취소와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결과 발표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소니픽처스가 “테러 위협 등으로 영화관 확보가 어렵다”며 개봉을 취소할 때까지만 해도 북한의 ‘최고존엄’(김정은을 지칭하는 말) 사수는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19일 FBI가 소니 해킹을 북한의 소행으로 공식 발표하며 분위기는 달라졌다. FBI는 “해킹 공격에 사용된 데이터 삭제용 악성 소프트웨어가 북한 해커들이 과거에 개발했던 다른 악성 소프트웨어와 연계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뒤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이번 해킹 공격은 미국에 엄청난 손상을 입혔다. 북한에 비례적(proportionally)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에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해킹은 사이버 반달리즘(파괴 행위)”이라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북한발 해킹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선 건 이번 사건이 향후 ‘사이버 테러’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2000년대부터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하고 있는데 최근 이 형태가 사이버 테러로 진화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본보기를 위해서라도 초기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존 케리 국무장관이 21일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에게 전화해 사이버 테러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며 북한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에 더해 직접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은 22일 “(북한에 대한) 대응조치 중 일부는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해 사이버 보복 가능성을 시사했다. 23일 북한에 서버를 둔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 등의 사이트가 한때 마비된 건 공교롭게도 미국이 엄포를 놓은 뒤다.

 북한은 지난 7일에만 해도 소니픽처스 해킹 연루설을 공식 부인한 뒤 공동조사를 제안(20일)하는 등 관망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하지만 FBI의 결과 발표 후에는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21일)을 통해 “백악관과 펜타곤, 테러의 본거지인 미국 본토 전체를 겨냥한 초강경 대응전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정원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