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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지 않으면서 왜 연애를 강요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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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연애를 하고 안 하고보다 어떻게 사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연애 칼럼니스트 정지민씨. [안성식 기자]

모태솔로.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솔로라는 뜻의 이 단어는 싱글들을 불편하게 한다. 직장생활에 지쳐 연애세포가 말라버린 여성을 가리키는 ‘건어물녀’란 단어도 마찬가지다. ‘ASKY’란 단어도 있다. 애인 안 생길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안 생긴다는 뜻의 ‘안생겨요’를 영어로 표기했다.

 이렇게 ‘사랑을 믿지 않으면서 연애를 강요하는’ 연애지상주의 세태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연애 칼럼니스트가 있다. 최근에 공저 『내가 연애를 못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를 출간한 정지민(25)씨다. 그는 “연애 못하는 건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변화된 사회구조 탓도 있다”고 싱글들을 위로한다.

 정씨에 따르면 요즘 젊은이들은 외모·학력·경제력 등 ‘스펙’을 따지며 연애를 하는 편이다. 그는 사람들이 외적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지켜봤다. 연세대 국문과 3학년이던 2010년, 휴학을 하고 소셜데이팅 업체 ‘이음’에서 마케팅·기획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음은 서로 써낸 프로필에 따라 비슷한 조건의 이성을 하루에 서너 명씩 소개해준다. 정씨는 “직업이나 출신학교 등 소개팅 주선자에게 노골적으로 따질 수 없었던 것들을 각자 써낸다”며 “서로 조건을 대놓고 밝힐 수 있도록 한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1만 명에 불과하던 이 업체의 회원 숫자는 현재 1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가는 대로 사랑하기가 어려워진 이유가 있다고 한다. 바로 ‘88만원 세대’인 20대가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이 예전보다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연애를 하는 데 드는 비용도 고려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취업도 어려운데 연애는 사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러다보니 더 따지게 되고 설사 연애를 하더라도 가벼운 만남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는 책에서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쓴 『리퀴드 러브』를 예로 들어 이 같은 현상을 설명한다. 바우만은 삶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현대인의 사랑이 고단해졌다고 말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연애를 한다. 정씨는 “연애를 하고 안 하고보다 ‘사랑’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따져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문학이 더 중요하다고도 했다. 인문학은 연애 관련 자기계발서와 달리 ‘연애의 기술’이 아닌 ‘사랑의 의미’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자신이 변화돼요.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거든요. 나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뭐 할거냐”고 묻는 눈치없는 직장상사에게, 신경쇠약 직전의 썸남썸녀에게, 매년 ‘크리스마스 악몽’을 찍는 솔로들에게 ‘연애보다 사랑 공부’가 우선이라는 정씨의 말이 참고가 될 것 같다.

글=위문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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