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쭉날쭉 형량 선고 사라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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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범죄에 대해 법관마다 들쭉날쭉한 '고무줄 형량'이 사라질 전망이다.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은 형사사건 재판에서 피고인의 구체적인 범죄 내용과 형량을 규정한 양형 기준에 따라 선고하는 '양형 기준법' 초안을 마련,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 제출했다고 8일 밝혔다.

초안에 따르면 범죄 등급을 세로 축에, 범죄 경력을 가로 축에 놓은 양형 기준표를 만든 뒤 범죄 유형과 내용 등을 점수로 매겨 해당 형량을 정해 놓는다. 점수별 양형의 간격은 '징역 1년~1년6월' '1년6월~2년'식으로 세분화된다.

판사는 양형 기준표에서 형량을 찾아 선고하지만 강제적 사항은 아니다. 국내에서 양형 기준의 법제화가 추진되기는 처음이다. 미국은 1987년 연방법으로 '양형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사개추위 관계자는 "법원 측의 의견을 받아 올해 안에 양형 기준법안을 확정해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되는 2007년에 맞춰 시행토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시민이 주요 형사사건에서 배심원으로 참여해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량에 대한 의견을 재판부에 내는 제도다.

?범죄 내용별로 수치화=범죄 등급은 ▶범죄 유형▶범행 수단과 결과▶범행 후 정황▶피고인의 역할▶수사 협조 등의 항목으로 구성된다. 범죄 전력은 전과, 동종 범죄 경력, 집행유예 기간 중 범행 여부 등으로 정한다. 같은 강도사건 피고인의 경우라도 단순 가담자인지 주동자인지, 흉기를 휘둘렀는지, 피해자는 얼마나 다쳤는지 등에 따라 점수와 형량이 달라진다.

현재는 판사가 형법에 정해진 형량 안에서 ▶범인의 나이와 환경▶피해자와의 관계▶범행동기와 수단.결과▶범행 후 정황▶기타 참작할 사유 등을 판단해 형을 결정했다.

사기죄의 경우 현행 형법에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어 법관의 판단에 따라 양형의 차이가 컸다.

이와 관련, 참여연대는 "사법부가 정치인.공무원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선 각종 선처 사유를 들어 관대하게 처벌하는 데 반해 절도 등 블루칼라 범죄는 엄벌한다"고 주장했다. 증여세 포탈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6월이 선고됐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에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반면 물건을 훔치러 남의 집에 들어갔다가 딱한 사정을 듣고 돈을 주고 나온 절도범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사례를 들기도 했다.

?법원에 대한 감시와 통제=양형 기준의 도입으로 법원 판결에 대해 사회적인 감시와 통제가 가능해지게 됐다. 그동안 법원은 내부적으로 일부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만들었으나 이를 비공개했다.

검찰 초안은 국회에 양형위원회를 설치하고 양형 기준을 벗어난 판결에 대해 법원에서 자료를 받고, 심사하는 권한을 갖도록 했다. 법관은 판결문에 양형 이유를 명시해야 하고, 양형 기준을 따르지 않을 경우 이유를 밝혀야 한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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