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한기 정가 이례의 부산|대통령 국정연설 이후의 정국기류와 각 당의 태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새해 정국이 유동하고 있다. 대통령 국정연설을 계기로 민정·민한·국민당 둥은 변화하는 새로운 정세에 능동적인 대응을 모색하면서 정치 정책의 기존방침을 전면 재검토 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동 한기였을 정가가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지구당개편대회, 전당대회, 정책개발 등으로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동하는 정국에 대응하는 각 당의 태세를 살펴본다

<민정당>
○…최근의 정세변화에 대응하는 민정당의 태세는 점차적으로는 안정을, 정책적으로는 「선진조국의 창조」에 당력을 집중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술렁대는 야당과는 달리 민정당은 국정연설에서 예고된 정치적 화합조치에 대해서도 정부측과 사전에 깊숙히 협의가 있었고 그에 따른 사전준비도 있어 「의외」란 반응은 전혀 없다.
또 이 조치가 1차적으로 야당에 주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계산도 있어 「조치」가 몰고올 정국변화를 냉정히 계산해보는 자세.
권익현사무총장이 작년 말 의원세미나에서『83년은 민정당에 새로운 도전이 예상되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새해 정국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했다는 풀이다.
앞으로의 정국향방에 관해 민정당이 생각하고 있는 대전제는 『현재의 정치질서를 깨뜨리지 않아야 한다』 는 것과 『여전히 민정당이 정국을 주도해 나간다』는 것. 권 사무총장은 이런 조건을『제5 공화국 수립 후 창당된 정당들을 해치지 않는 범위』라고 표현했다. 『앞으로의 변화도 구시대의 재생이 아니라 청산에 있다』라고 한 전두환대통령의 말을 깊이 음미해 보라는 것이 많은 간부들의 일치된 강조다.
특히 민정당은 정국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야당의 운영에도 간접적인 책임을 느낀다는 자세인 듯 하다. 이 때문에 민정당은 작년 말의 석방조치이후의 일련의 변화에 대해서도 「현재의 야당이 버틸수있는 한계 내」의 조치가 돼야한다는 의견을 정부 쪽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민정당주변에서는 비록 정국의 기류가 유동한다고는 하지만「급전」하거나「대규모」의 변화는 없을 것 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민정당의 관심은 정국변화에 대응하는 야당가의 움직임과 그에 따라 정국변화가 얼마나 증폭돼나갈 것인가 하는 점에 달려있다.
정국변화와 85년 총선과 관련해 민정당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3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당 체제의 재정비문제다.
당 총재의 친정체제를 더욱 강화하면서도 예상되는 정국의 변화에 가장 능동적으로, 유연성 있게 대처할 새 당직 팀이 모색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며 벌써부터 골격의 변화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숙제 해결 후 설계>
○…새해를 「정책개발의 해」로 잡은 민정당은 모든 정책의 대전제를「선진조국」실현방안에 두고 당의 두뇌를 총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전당대회에서 채택해 85년 선거공약으로까지 밀고 간다는 야심적인 구상에 따라 민정당은 △과거 집권당이 손을 못 댄 해묵은 문제 △국민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부터 과감히 우선적으로 해결해 나갈 방침이다.
예컨대 문제점이 많다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손을 못 댄 정부투자기업의 운영개선, 부가세를 비롯한 세제개선 등에 관해 곧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며 농민과 정부간에 연례적으로 문제가 돼온 추곡·하곡의 수매가와 수매량문제 같은 것도 제도적인 해결책을 강구한다는 생각이다.
생산자인 어민의 소득에는 큰 혜택도 없으면서 소비자에게는 비싼 수산물의 유통구조개선 문제 같은 것도「근본적 해결」을 서두르겠다는 것.
한 간부는 『구시대엔 행정부와의 마찰을 우려하거나 선거에서의 표 의식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손을 안대고 넘어간 일이 많지만 올해부터 민정당은 욕을 먹는 일이 있더라도 문제는 해결해 나가겠다』 고 했다.
해묵은 숙제를 해결한 기반위에 선진조국의 본격적인 청사진을 설계한다는 계획아래 민정당은 정책위와 정책연구소, 각 정책분과위를 총동원해 두뇌를 짜고 있다.

<민한당>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민한당에 즉각적인 파급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국정연설이 있은 바로 그날 당권도전설이 끈질기게 나돌던 신상우 전 사무총장이 유치송총재와 비밀접촉을 갖고 경선을 포기한다는 극적인 타협을 보았고 이때부터 민한당은 곧바로 전개될 새 정국에 대처하는 능동적인 자세로 전환하기 시작.
지금까지 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경선만이 민주정당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고 주장해왔던 신의원이 유총재를 중심으로 단합할 것을 호소하는가 하면 당 간부들은 이제까지 재야에 있었던 옛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물론 정치적 해빙과 더불어 당이 가급적 재 야권인사를 적극적으로 영입함으로써 이제까지 굳혀온 제1 야당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명실상부한 수권정당으로서의 체제정비를 위한 도약계기가 될 수 있다는 명분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 같은 명분상의 주장과는 달리 내부적으로는 퍽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 도 사실이다.
17명의 구 신민당의원이 주축이 되어 창당된 민한당은 지난 2년 동안 나름대로의 위계질서나 당 체제를 갖춰왔는데 이제 또다시 새로운 구시대인물들의 참여가 예상됨으로써 이들과 80%에 달하는 당내 신참세력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경쟁적 위치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현실에 직면케 된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현실문제가 지구당관계.
92개 지구당중 현재 구 야권인사들과 경합되고 있는 곳은 서울의 8개 지구를 비롯한 30여개지구.
이중에는 김제만 전의원과 같이 이미 사망하여 무주공산이 된 경우와 해외유학 및 정치포기로 현역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이 사실상 보장을 받은 지구는 포함되지 않은 숫자다.
국정연설이 끝난 직후 일부 민한당의원 들은 여당의 실력자들을 찾아다니며「전주인」의 거취여부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는 소문도 있다.

<민한, 연구과제 산적>
전직의원 비서관출신의 모 의원은 최근 열렸던 지구당개편대회에서 축사 차 참석한 인사들이 자신보다는 자신의 주인 격(?)인 전의원을 자꾸 거론하는 바람에 누구를 위한 개편대회를 치렀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는 것.
현재의 당헌이 재야 인사영입을 위해 부총재·당무위원·중앙상무위윈 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하고 16개의 공석지구당도 갖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재야인사들을 흡수 소화시키기엔 부족하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오홍석중앙상위의장, 김현규정책심의회의장 같은 이들은 당헌개정권을 당무회의에 위임하여 신축성 있게 대처할 것을 주장하는 등 뭔가 급박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민한당은 이 같은 인사문제 뿐 아니라 국공연설에서 제시된「선진한국의 창조」에 대처하는 당의 정강정책 둥의 손질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
현재의 정강정책은 당이 단 시일 내에 창당되는 과정에서 문자 그대로 급조된 것이기 때문에 그러잖아도 손질이 불가피했지만 국정연설을 계기로 정강정책, 기본정책, 85년 총선을 겨냥한 선거공약 등 정책분야에서의 연구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보다 과감한 개방정책을 지향해야하고 중산층의 육성을 위한 세제촵학제촵사회보장제도 등의 대폭적인 손질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전당대회를 끝내는 대로 이를 위한 본격적인 실무 연구팀을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당>
○…민한당의 복잡한 당내기류와는 달리 제3당인 국민당에는 국정연설로 예상되는 변화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구 공화당출신 재야여권인사 중 상당수는 이미 정치권밖에 있을 뿐 아니라 당내 수용태세에 있어서도 민한당에 비해서는 훨씬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정국이 오히려 당세확장과 지위향상에 플러스 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18명의 지역구의원 중 재야인사와 경합해야하는 지구는 거의 없고 92개 지구당중 △미창당 지구 14개 △사고당부 11개△임시관리지구 9개 등 34개 지구가 사실상 무주공산상태이고 원외위원장중 일부가 물러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여유가 많은 편이다.
특히 재야인사중 당의 「간판」이나「대들보」가 될만한「거물급」이 영입될 경우 임시전당대회를 통한 전면적인 체제개편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공기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지구당개편대회에도 나타나 당입으로서의 활동에 소극적 태도였던 구 공화당출신의 양찬우 이종근 장동식 김영병씨 등 원외위원장이 개편대회에서 재선됐고, 한갑수 윤인식 이호종 이영표씨 등도 금명간 거취를 밝히겠다고 통고해 왔다는 것.
현재의 당헌상 재야인사영입을 위해 특별히 명시된 규정은 없으나 2월 전당대회이후 있을 당직개편과정에서 21명의 당무위원 중 5명 정도를 공석으로 둔다거나 기타 주요당직자의 임명을 보류하는 등 「운영의 묘」를 통해 영입태세에 만전을 기할 수 있다는 것이 당고위간부의 설명이다. <고흥길·전육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