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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V사극 보자 하니 … 어, 요즘 얘기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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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신돈 역의 손창민.

TV사극이 달라졌다. 궁중 여인네들의 암투와 시기 모략, 혹은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음모와 배반이 판을 치던 과거의 사극이 아니다. 이미 ‘다모’‘해신’등 스타일의 변화를 선도한 퓨전 사극이 한 시대를 풍미한 바 있으나 최근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이름하여 ‘적극적인 현실 반영’이다.

최근 종영된 KBS '불멸의 이순신'을 보자. 이 드라마에서 장군 이순신은 합리적이고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로 그려졌다.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 이면엔 현실에서 사라진 온전한 '리더십'에 대한 향수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제작진 역시 실종된 리더십 대리만족을 염두에 두고 이순신의 인물상을 그렸다고 밝혔다.

이번 주 시작된 SBS '서동요'(극본 김영현, 연출 이병훈)와 이달 말 닻을 올릴 MBC '신돈'(극본 정하연, 연출 김진민) 등의 대하 사극에서도 이런 경향은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과거란 박제를 뚫고 현실로 뛰쳐나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TV사극. 현실을 알고 싶다면 이젠 사극을 봐야 할 때다.

# 백제 - 정보 기술 전쟁

TV사극으로는 처음으로 백제를 배경으로 한 '서동요'는 '태학사'란 기술 관료 집단을 전면에 내세운다. 지금으로 따지면 '한국과학기술원'에 해당하는 태학사는 백제 과학 기술의 르네상스를 선도하는 기관이었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보유한 덕분에 고구려.신라 등에서 고급 기술을 빼내려는 첩보 행위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했을 터.

첩보전의 첨병은 스님들이었다.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국가 간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점을 삼국의 정권이 최대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에선 '산업 스파이 승려'들의 내막이 샅샅이 드러난다.

또한, 본래 신라인이었으나 어린 시절 백제로 넘어와 태학사로 잠입한 뒤 장기간에 걸쳐 고급 정보를 빼내는 인물도 등장한다. 일종의 '고정 간첩'이었던 셈이다. 김영현 작가는 "21세기는 영토 전쟁이 아닌 정보 기술 전쟁 시대가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한반도에도 그런 치열함이 있었다는 역사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자부심과 정보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금으로 보면 거의 상식 수준이지만 당시로선 최첨단에 해당하는 다양한 농사 기술도 등장한다. 가뭄도 아닌데 땅이 말라 있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지렁이를 푼다든가, 집안 습기를 없애기 위해 온돌이 처음 도입된다는 등의 에피소드가 전개될 예정이다. 김 작가는 "최근 트렌드인 '웰빙 라이프'가 삼국시대에도 있었음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의 유행이 과거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 고려 - 개혁 바람

'신돈'의 화두는 '개혁'이다. 지금껏 '타락한 요승'으로 불려온 신돈을 기존 권문세족에 맞선 개혁가로 재조명한다. '신돈'을 기획한 정운현 MBC 드라마국 부국장은 "신돈은 공민왕을 도와 고려말 정치.제도 개혁을 단행한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MBC가 밝힌 해석의 논리는 이렇다. 공민왕은 당시 고려를 지배하던 원나라와 고려의 권문세족들에 대항해 독자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혈연.학연.지연 등으로 연결된 기득권층이 서로 서로 눈감아주며 권력을 지키려 했기 때문이다. 공민왕은 세상에 연고가 없는 사람을 찾았고, 그가 바로 천민 출신인 신돈이었다.

신돈은 공민왕의 전폭적인 후원 속에 개혁정치를 펼친다. 권세가들이 힘없는 양민에게 빼앗은 땅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줬고, 억지로 남의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민으로 회복시켰다. 드라마의 기획의도는 신돈의 개혁과 좌절을 통해 진정한 개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것. '개혁'을 화두로 내세우는 이 시대에 드라마가 부합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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