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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살린 사서-간호원 등 인기|도배-요리사-보모도 수요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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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주부 시간제 근무
세 얼굴을 가진 여자-문혜리씨(35·서울 자양동)는 한 남편의 아내와 두 자녀의 어머니, 환자에겐 다정한 간호원으로 일하며 중년기의 권태를 느낄 틈이 없다.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 서독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문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간호원으로 일하는 파트타이머(시간제 근무자). 주5일 근무에 하루 근무시간은 6시간, 시간당 1천4백원씩을 받는다.
여성들의 학력이 높아지고 사회활동이 늘면서 가정에 소홀하지 않고도 일거리를 가질 수 있는 방편으로 등장한 주부 파트 타이머가 날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서울시내 몇몇 종합병원엔 문씨의 경우와 같은 파트타임 간호원이 5∼6명씩 근무하고 있다.
전문지식의 활용이란 면에서 전망이 밝은 직종 중의 하나가 도서관 사서.
K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국내 유일의 사서교육원(성균관대 부실)에서 1년 동안 교육을 받은 뒤 자격증을 따낸 박정수씨(38·서울 청파동)는 도서정리 및 분류의 베테랑으로 올해로 경력 12년째.
박씨는 꼼꼼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고서정리에 뛰어나 각 대학도서관의 단골손님. 하루 8시간 근무에 8천∼1만 원씩의 일당을 받는다.
각 대학도서관이나 대기업의 조사자료실·홍보실에서 전문사서를 수시로 찾기 때문에 일거리는 많은 편이다.
전문직종이 아닌 주부의 일상경험을 토대로 하는 파트타임 일거리도 많다.
주부클럽 연합회나 서울YMCA 등에서는 30∼50세정도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1∼2개월 동안 교육을 시켜「파출요리사」나 베이비시터(보모)를 배출한다.

<어렵잖은 일인 삼역>
파출요리사는 생일잔치·회갑연 등에 초청되어 재료준비는 물론 상차림까지 끝내주는 1일 주방장. 수고비는 20인 분 기준 1만5천∼2만원.
현재 60여명의 주부요리사중 경력 7년의 베테랑 이정순씨(54·서울 거여동185)는『단골도 많고 대우도 괜찮은 편』이라며 음식에는 정성이 첫째라고 나름대로의 요리이론을 편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며 새롭게 등장한 베이비시터도 수요가 많은 직종.
『할 일이 없으면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손쉬운 일처럼 생각되지만 까다로운 교육과정을 거쳐야 정식 베이비시터가 될 수 있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애보기」경험자들의 말이다.
D상사의 영업부장 임 모씨(36·서올 화곡동)와 정 모씨(32·S대 교수)부부는 매일 아침8시에 외동딸 미왕양(3)을 차에 태우고 조영순씨(47·서울 서교동)집으로 직행, 조씨에게 아기를 맡긴 뒤 직장으로 향한다.

<남성영역까지 진출>
조씨는 미옥 양이 인큐베이터에서 자랄 때부터 돌보아온「제2의 어머니」인 셈이어서 서로 친하고 탈이 없다. 베이비시터의 한달 수입은 6만원선.
서울시내 S백화점, L백화점 등에는 모두 50여명의 주부가 파트 타이머로 판매일선에서 뛰고있다.
L백화점 주방용품 부에 근무하는 주부 유창선씨(34·서울 화곡동)는『손님들 중에 주부가 많기 때문에 고객들의 입장을 잘 이해해 줄 수 있어 인기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주부 판매원의 수입은 하루 5시간 근무에 시간당 5백∼7백원.
여러 직종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주부 파트 타이머 중엔 종래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것도 꽤있다.
서울 독산동에 있는 YWCA근로여성회관(관장 변도윤)에서는 4년 전부터 여성들을 위한 이색 직업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직종은 도배사·표구사·금속세공사·피부관리사·판금공 등.
도배사의 경우 재단·풀칠·도배 등 3명이 1개조가 되어 작업을 하며 일당 1만∼1만5천 원.
경력 5년째의 주부 최운선씨(49·서울 독산동)의 경우『이제는 25평 짜리 집 방3개 정도는 하루동안 혼자서 거뜬히 해치울 수 있다』 자랑하기도.
표구사로 일하는 이 모씨(33·서울 시흥동 한양아파트)는 오전 한나절만 작업해도 한달 2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기염을 토한다.
요즘은 수요가 많아 액자 1개에 1만원, 8폭 병풍 1개에 8만원 내외를 표구료로 받는다. 표구사의 경우 한발 나아가 그림을 직접 구입해 표구를 해서 팔면 짭짤한 부수입도 올릴 수 있어 권장해 볼만한 직종이라고 했다.
여성인력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 주부 파트 타이머에 부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
YWCA근로여성회관 변 관장은『시중 일부학원에서 장삿속으로 주부부업을 과대 선전하여 주부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며 능력이나 취업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실망하고 주저앉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전문훈련소도 등장>
지난해 10월엔 모 학원에서 주부들에게 도장 파는 기술을 가르친다는 광고를 내어 전국 인판업연합회가 당국에 고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주부가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결손가정의 싹이 되는 등 몇몇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돈벌이와 여가선용이라는 강점 때문에 주부 파트 타이머는 점차 뿌리를 내리고있다.
전문가들은 주부들이 수입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서도 여가를 선용하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파트 타이머라고 지적하고『중년기에 맞는 자아상실의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진단한다.<김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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