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결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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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런 일화가 있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한 노부부가 야자나무에 기대앉아 하염없이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중의 한 노인은 몸이 불편한 듯 때때로『아이고, 아이고…』신음소리를 냈다.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할아버지였다.
옆에서 이 소리를 듣던 미국인 부인이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어서 떠나세요. 가도 좋아요!』
「아이고」를 신음 아닌『아이 고』(나는 간다)소리로 오해한 것이다.
물론 어느 호사가가 지어낸 얘기겠지만, 이 속에 담긴 알레고리(풍유)는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한국인과 미국인 부부사이의 컬츄럴 갭(문화적 간격)이 얼마나 절망적(?) 인가를 되새겨보게 한다. 50년 해로가 문제가 아니다.
영국 시인「R·키플링」의 시도 있었다.『오, 동은 동, 서는 서, 이 둘은 만날 길이 없구나.』(동 서부).
외무부통계에 따르면 해외거주 교민 수는 1백만만 명. 이들은 무려 98개국에 흩어져 산다. 가까운 일본의 65만 교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구미의 이질 문명권에 살고 있다. 미국만 해도 30만 명에 가깝다.
산 설고, 물 선 것은 둘째 문제다. 최근 노동부가 해외교민들을 위한 결혼상담창구를 개설한다는 뉴스는 컬츄럴 갭의 깊은 보상을 다시금 보여준다. 신상명세서와 사진 교환 등을 알선한다는 것이다.
사진결혼은 원래 하와이이민 사에 나오는 얘기다. 백년을 거슬러 1850년대 중국인들이 하와이에 노동이민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남자 쪽에서 먼저 사진을 내놓는 것이 관례였다. 그후 하와이의 일본인들도 같은 방식으로 본국에서 배우자를 구했다.
우리 나라 교포들의 사진결혼이 성행한 것은 1905년 하와이 이주 이후였다. 최초의 성사는 1910년 12월 2일 38세의 노총각 이래수씨와 최사라양 사이. 이씨의 사진을 보고 최양이 하와이로 이민, 이민국 사무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는 통신도 교통도, 모두가 절벽과 같아서 사진결혼이 빚는 비극도 적지 않았다. 하와이의 신랑 쪽에서 보내는 사진들은 대부분 이민 초기의 모습이었다. 젊고 말쑥한 인상. 게다가 편지도 주위의 대필을 받아 명필명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무지개가 아니었다. 하와이에 도착한 색시 감들은 남루한 노동복에, 고생으로 찌든 모습을 보고 비로소 꿈을 깨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통신이 빈번하고, 인지가 발딱한 요즘은 그런 희극 같은 비극은 없을 것이다. 카세트에 음성을 담을 수도 있고, VTR에 움직이는 실상을 녹화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세상에도「동은 동, 서는 서」의 깊은 절벽을 메울 수 없는 현실이 오히려 아이로니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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