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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⑧기술진보] 74. 생명 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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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나 장미 나뭇가지를 잘라 땅에 꽂으면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운다. 원래 식물과 유전자가 똑같은 개나리와 장미가 나온 것이다. 이는 식물의 복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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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7년 영국 로슬린연구소 이언 윌머트 박사팀이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키기 전까지 동물은 이처럼 복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믿었다. 단지 수정란 할구(割球) 세포를 핵을 빼낸 난자에 다시 넣으면 쌍둥이가 많이 탄생하는 정도를 복제로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 복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둘 이상의 숫자로 늘려 놓은 것에 불과했다. 이미 태어나 살고 있는 생명체의 복제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돌리가 태어난 이후 불과 8년여 만에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는 이미 태어나 자라고 있는 생명체 복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말 그대로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물을 복제한다. 즉, 그 유전자와 모습이 완전히 닮은 새로운 생명체를 인간의 손으로 탄생시키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복사기에서 서류를 똑같이 복사하듯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생명 복제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행위’라는 종교계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그렇게 복제하는 것을 체세포 복제라고 한다. 복제하려는 동물의 몸에서 떼어낸 세포 하나를 같은 종의 동물 난자(핵을 뺀 것)에 집어넣어 키운 뒤 대리모 자궁에 착상시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정자도, 온전한 난자도 사용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생명 탄생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체세포 복제가 개발되면서 동물이 탄생할 수 있는 방법 하나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더구나 세포 하나를 제공한 동물과 그 유전자 모습이 똑같이 복제된다. 벌써 이 방법으로 소ㆍ돼지ㆍ생쥐ㆍ말ㆍ노새ㆍ개ㆍ고양이 등 복제된 동물만 13종에 이른다. 이 중 한국에서 복제한 동물은 소ㆍ돼지ㆍ개ㆍ고양이 등 네 종이다. 개의 경우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이 세계 처음으로 복제했다.

한국의 생명 복제 기술은 모방에서 시작돼 이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황우석 교수가 맨 처음 시작했다. 황 교수는 99년 젖소 ‘영롱이’와 한우 ‘진이’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였다. 그러나 한국의 생명 복제 기술은 세계적으로 눈길을 끌지 못했다. 이미 외국 연구실에서 한 것을 한국에서도 해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갈고 닦은 실력은 세계 처음으로 2004년 인간 배아 복제와 줄기세포 배양, 2005년 개 복제 등의 성과를 일궈냈다. 이들 성과는 한국의 복제 기술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는 역할을 했다. 인간 배아 복제 역시 소나 돼지 등 동물 복제 기술이 밑거름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동물 복제 기술이 없었다면 인간 배아 복제와 줄기세포 배양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8월 복제 개를 선보인 서울대 수의과대 잔디밭에는 복제 동물의 전형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프간하운드인 복제 원본과 100일 된 복제 개는 검은 바탕의 흰 점 위치도 똑같았다. 물론 유전자도 같았다. 복제 개를 낳아준 누렁이 어미(대리모)와는 닮은 점을 찾기 어려웠다.

윌머트 박사는 “개 복제는 동물 복제의 정점을 찍은 큰 사건”이라고 한국의 복제 기술 수준을 평가했다.

복제 동물의 용도는 다양하다. 멸종 위기 동물을 복원할 수 있다. 개 복제 기술의 경우 개과의 멸종 위기 동물인 ‘한국늑대’의 수를 대량으로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복제 돼지의 경우 인간 장기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인간과 장기의 크기가 비슷한 미니 돼지를 복제하면서 유전자를 조작해 그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할 경우 면역거부반응이 없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생명공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미 상당한 연구 성과도 거두고 있다. 서울대 의대 무균 돼지 사육장에는 황 교수팀이 인간 유전자를 집어넣어 복제한 미니 돼지 수십 마리가 자라고 있다. 이들은 인간에게 장기를 이식하기 위한 연구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량 품종의 가축을 대량으로 보급할 수도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평행선 달리는 생명윤리 논쟁

배아 줄기세포 연구와 동물 복제는 생명윤리 논쟁을 촉발했다.

생명윤리학계와 종교계가 배아줄기세포는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 복제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연구에 제동을 걸었다. 반면 배아줄기세포 연구자들은 난치병 질환을 치료하려면 이만한 대안도 없다며 연구를 강행하고 있다. 아직도 두 주장은 그 접점을 찾지 못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생명윤리학계와 종교계는 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하기 위해 배아를 파괴하는 것은 생명을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배아는 시험관 아기를 하고 남은 잔여 배아와 황우석 교수가 성공한 체세포 복제 배아 두 종류가 있다. 가톨릭의 경우 이 두 가지 배아를 모두 생명으로 보고 있다. 배아는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견해다. 특히 가톨릭계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이뤄진 순간부터 생명체로 규정한다.

그러나 배아 연구자들은 수정된 지 14일 이전에는 단지 세포 덩어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마리아병원 박세필 박사는 “5년 이상 된 잔여 배아는 어차피 버려질 것이다. 이를 이용해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것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황우석 교수는 정자와 온전한 난자를 사용하지 않고 배아를 만드는 데 이를 생명이라며 연구를 못 하게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특히 난치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수없이 많은데 복제 배아를 이용해 이들을 치료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견해를 자주 밝혔었다. 생명윤리학계는 복제 배아의 경우 인간도 복제하는 시대를 오게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클로네이드 ‘인간복제’ 주장, 결국 ‘사기’로 끝날 듯

미국 클로네이드사 소속 브리지트 부아셀리에 박사는 2002년 12월 27일 미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계 처음으로 인간 복제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사흘 전 인류 최초의 복제 아기가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으며, 3.2㎏으로 건강하다는 것이 회견의 주요 내용이었다. 클로네이드 측은 그 이후에도 복제 인간이 연이어 출산돼 모두 6명이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유전자 검사 결과 등 복제에 따른 과학적 증거를 내놓지 않고 있다. 클로네이드 측이 인간 복제에 성공했다고 주장할 당시에도 그런 증거를 내놓지 않아 과학계에서는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인간 복제는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외신들의 반응이었다.

열정과 뚝심의‘스타 과학자’ 황우석

▶ 황우석 교수가 세계 처음으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배양에 대한 연구 성과를 영국에서 발표한 뒤 귀국, 인천공항에서 포즈를 취했다.

서울대 황우석(53) 석좌교수는 정부에서 파견한 경호원이 밀착 경호한다. 차로 이동할 경우 두 대가 다닌다. 앞 차에 황 교수와 경호원, 뒤 차에 경호원 2명이 붙는다. 서울 논현동 집 옆에는 경비 초소가 따로 있다. 국가 요인급 경호를 하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이런 경호 대상이 된 민간인으로는 황 교수가 처음이다. 과학자로서도 처음이다. 황 교수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에는 황 교수 이전까지만 해도 스타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은 있었지만 스타 과학자는 없었다. 과학이 경제 성장의 도구라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과학자 역시 그런 대접을 받았을 뿐이다. 황 교수는 지금 국민적 영웅이 되다시피 했다. 동물 복제 기술을 가장 큰 밑천으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불과 4~5년 사이에 평범한 과학자에서 ‘국민 과학자’로 발돋움했다. 과학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센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황 교수는 1999년 복제 소 ‘영롱이’와 ‘진이’를 태어나게 했을 때만 해도 세간의 이목을 많이 끌지 못했다. 소 복제는 이미 외국에서 성공한 데다 복제 양 돌리가 태어난 지도 3년이 된 때였기 때문이다. 연구비와 시설도 부족해 자신의 경기도 광주 땅에 연구용 농장을 세워 놓고 천막 연구실에서 동물 복제 연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황 교수의 열정과 성실성 등은 독지가들이 조건 없이 연구비를 지원하고, 천막이 있던 연구 농장의 터에 가건물 연구실을 지어주는 등 원군을 끌어들이게 했다. 이제 그는 다른 과학자에 비해 풍부한 연구비, 국민적 성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한 사업가는 “황 교수는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응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며 “상대방을 매료시키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 교수가 스타가 된 때는 2004년 인간 배아를 복제하고 거기서 줄기세포를 세계 처음으로 추출하면서부터다. 여기에도 동물 복제 때 갈고 닦은 배아 복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는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 것으로 기대되면서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이 인간 배아 복제와 줄기세포 배양에서 세계 정상에 서기 시작한 단계다. 황 교수 개인에게도 온갖 찬사가 쏟아졌다. 지난해 이를 주요 업적으로 인정받아 상금 3억원의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등 9개 상을 휩쓸었다. 언론에는 연일 황 교수 이름이 오르내렸으며, 생명윤리 문제 등 역기능은 입도 뻥끗하기 힘든 분위기였다.‘황우석 쓰나미’라는 유행어가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해 연구 성과를 발전시켜 올해 내놓은 ‘난치병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와 개 복제 성공 등은 그의 명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국민적 성원을 받는 만큼 얼마나 연구 성과를 실용화로 연결해 국부 창출과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하게 될지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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