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에 찢긴 미국] "사망자 1만 명 넘을 수도 온 국민 마음의 준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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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트리나로 침수된 뉴올리언스 집에 남아 있던 흑인 청년 레너드 토머스(23)가 5일 특수기동대(SWAT)가 들이닥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토머스는 시 당국의 철수 권유를 거부하고 남아있다가 이날 강제로 퇴거당했다. 당국은 “남아 있는 주민들에게 더 이상 물과 식량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올리언스 AP=연합뉴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뉴올리언스 지역 사망자가 1만 명이 넘는다 해도 터무니없는 숫자는 아닐 것이다."

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은 5일 NBC 방송의 '투데이쇼'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피해자 시신 수습 등 복구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피해 규모와 정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란 얘기다. 외신들에 따르면 뉴올리언스 시내에는 곳곳에 시신이 널려 있다. 운하에 둥둥 떠다니거나 전신주에 묶여 있는 주검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참상이 뚜렷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카트리나로 인한 국민들의 2차 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 장관은 4일 폭스 TV에 출연, "온 국민이 앞으로 닥칠 끔찍한 일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카트리나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보험회사들의 보험금 총액이 최소 140억 달러(약 14조원)에서 최고 350억 달러(약 35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경제 전체에 끼칠 손실액도 100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 21세기 판 블랙 엑소더스(흑인 대이동)? =이재민들의 '엑소더스'가 계속되고 있다.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가 이재민 22만 명을 받아들인 뒤 "더 이상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고 호소함에 따라 20여 개 주가 군 기지와 대형 경기장 등에 이재민을 받겠다고 나섰다. 아칸소주가 7만 명, 미시간주와 앨라배마주가 각각 1만 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와 관련, "외지로 대피한 이재민들이 뉴올리언스로 복귀하지 않을 경우 이는 남부에서 북부로 흑인 500만 명이 옮겨갔던 20세기 초 '대이동(Great Migration)'이래 최대 규모의 흑인 이동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루이지애나 주 정부는 뉴올리언스를 재건하는 데 길게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저소득층인 주민 상당수가 귀향하는 대신 일자리와 기댈 곳이 있는 외지에 그냥 눌러앉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카트리나 조사위원회 구성을"=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은 4일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카트리나에 대한 행정부의 대처가 적절했는지를 조사할 '카트리나 조사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클린턴 의원은 "위원회는 9.11 조사위원회처럼 정부 인사를 소환해 청문회를 여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피해 지역 복구와 치안 유지를 위해 이라크에 파병한 주 방위군 수백명에게 귀환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10일 투입된다.

◆ 유명인사도 동참=영화배우 존 트래볼타는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모은 음식 5t을 자신의 전용기에 싣고 피해 지역으로 날랐다. 유명 작가 존 그리셤은 500만 달러를 쾌척했다. 미식축구 스타인 페이턴 매닝(인디애나폴리스 콜츠)과 동생 엘리(뉴욕 자이언츠)는 현장에서 생필품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벌였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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