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 “나는 섹스보다 이렇게 안고 있는 게 좋다. 이게 영원처럼 느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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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섹스보다 이렇게 안고 있는 게 좋다. 이게 영원처럼 느껴진다.”(김영하) 흡혈귀가 되어버린 남자가 여자에게 속삭인다. 섹스가 동작태라면, 포옹은 지속태다. 동작에는 처음과 끝이 있으나, 지속은 그냥 지속일 뿐이다. 그래서 섹스가 제한적이라면, 포옹은 초월적이다. 지속은 늘 순수지속이다. 사랑하는 이를 안고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불멸의 엠블럼(Emblem)을 갖게 되는 것이다.

-권혁웅의 『미주알 고주알』(난다)에 실린 ‘섹스와 포옹의 차이점’ 전문

‘시인의 몸 감성사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산문집의 한 대목. 사람의 각 신체부위에서 연상되는 이미지, 각 부분의 운동 기능과 관련된 상상력을 수백 꼭지의 짧은 글로 표현한 책이다. 인용한 글은 전체 16개의 챕터 가운데 ‘달아오르다-성기’ 챕터에 포함돼 있다. 격렬한 건 강력하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단정한 포옹 자세는 온갖 시련에도 변치 않는 마음 속 첫사랑의 상징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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