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다운 새로움·실험성 부족|올해 각지의 신춘문예소설을 읽고-김윤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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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금년의 당선작 특징은 다음셋으로 개괄된다.
첫째, 작가들이 한명만 제하면 모두 남성이라는 점이다.
종래 몇년 연거푸 여류들이 대거 당선된 점과 대조적이라 할만하다.
둘째, 작중 화자가 한결같이 1인칭<나>로 되어있고 그것도 순수한 관찰자적 시점이 아니라 사건에 개입하는 시점이라는 점.
3인칭의 객관적 시점에 의거한 정석형의 기피현상은 주목될 만하다.
셋째, 소재상에서 볼 때, 가장은 6·25의 얘기에서 최근의 청소년의 모럴에 이르기까지 걸쳐있기는 하나, 대체로 새로움이나 실험적인 패기가 부족한 점이다. 문제의 중요성은 결국 이 세째에 든것에 있을 것이다.
『바람이여 넋이여』(이수광)는 기성작가들에 의해 되풀이된 소재이고 또 주제이다.
6·25때 빨갱이로 활동하다가 죽은 형수에 관한 얘기. 작중 화자인 <나>가 작은아버지의 부름올 받아 선산에 묻히지 못한 형수의 이장을 하기위해 시골로 가는데서 얘기가 시작된다. 해방직후 형과 형수가 좌익에 가담했다는 것, 형이 먼저 죽고, 형수는 6·25때 인민재판을 열어 사람들을 처단했다는 것, 국군이 북진하자 이번엔 마을사람들의 보복으로 형수가 처형되었다는 것.
이런 얘기에 새로움을 더하기란 어렵다.
작은 아버지라는 인물이 다소 살아있는 형국이긴 하나 그 역시 과장이 심하다. 다만 이 작품은 구성이 완벽할 정도여서 안정감을 주고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우일병과 분대장』(나명순)은 월남전을 소재로 한 것이라 다소 이색적이라 할지 모르나, 기실은 월남전과 별로 관계가 없다. 월남전의 특수성이나 전투생활의 특징으로서의 모습들이 별로 없고, 따라서 묘사의 치밀성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구성상의 안정감을 얻고, 짜임새를 유지한 것은 <나>와 우일병의 대립구성 때문이다.
『국의자』(안석강)는 아직도 기능화된 사회로 전환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병리를 이유민이라는 괴짜를 통해 비판한 대결형 작품이다. 인사과장은 입사한지 3개월된 이유민을 해고하라는 사장의 명령을 받고, 그 문제의 인물을 살피기 시작한다. 이유민은 선천적으로 고개가 숙여지지 않는 불구자이었음이 판명된다.
상사에게 머리가 숙여지지 않는 이 괴짜의 괴로움이 15년 근무한 인사과장 <나>에게 공감되고 마침내 <나>는 사표를 낸다는 줄거리다. 괴짜인물이라는 착상은 썩 참신한 것이나 사표를 제출하는 <나>의 사춘기 청년같은 오기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작품구성상 적절하지 못하다.
『깊고 긴 노래』(신필영)는 앞의 작품들보다는 주제의 참신함이 어느정도 인정된다.
한겨울 산에서 움막을 짓고 단식을 하는 친구를 찾아간 <나>는 함께 단식을 하면서 친구의 인생관에 젖는다. 그 친구가 도시로 나와 교통사고로 죽은 얘기를 다룬 이 작품이 다소 새롭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고구려의 노래로 알려진 「공후인」에서 제목을 딴듯한 이 작품의 새로움은 피안(죽음)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주인공의 그리움이 기실 젊음의 특권이라 본 점에 있다.
『상실의 계절』(김인숙)은 금년도 당선작 중에서 가장 서툰 문장으로 쓴 가장 참신한 작품이다. 얼마나 서툰 문장인가를 흉보기란 매우 쉽다. 『내가 건널목을 건너야겠다는 결심을 불이 세번이나 바뀌도록 할수가 없었던 것은』이라는 문장등이다.
우리말의 정상적 구분이나 순서를 따른 것이 아니다. 역설같지만 바로 이점이 이 작가의 가능성이자 참신함의 원천에 해당된다. 최연소자 답게 이 작가는 앙큼할 이 만큼 치밀한 계산을 작품 요소요소에 심어 놓았다. 꽃집 녹원에서 첫걸음을 시작하여 1백보를 걷고, 병원수술실까지 5백보, 병원까지 9백보라는 단위를 이정표 모양 설정하고, 그 길이 속에서 얘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초년급 여대생인 <나>는 화약회사 사장의 아들이며 미남인 대학동급생을 사랑했다는 것, 그가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그로부터 멀어져 갔고, 결혼하자고 말했을 땐 더욱 멀어져 갔으나, 그가 화약공장사고로 부상을 당했고, 병원에 입원하고, 성불구자가 되었음이 판명 되었을때 비로소 그를 사랑할 수도 있고 그와 결흔도 할수 있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는 <나>의 감정의 변모 과정은 센티멘탈한 것이긴 하나, 순수하고 정결한 것임엔 틀림없다.
이들 5명은 이젠 정식으로 우리 문단에서 받아들여졌다.
경사스러운 일이 아니면 안돤다. 이들에겐 관례에 따라 금년내에 각각 3번이상의 발표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3개 문예종합지의 특징이 그것이다. 데뷔하자마자 겪어야 되는 이러한 시련은 야망에 불타는 사람에겐 미홉한 일이며 그렇지못한 사람에겐 혹독한 일이리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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