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나운규 '아리랑' 재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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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미친 짓으로 생각했다. 이 시대에 누가 영화 '아리랑'을 보겠나.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재미가 있을 것도 같았다. 예스런 분위기에 충실하면 요즘 젊은이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2003년판 '아리랑'을 만든 중견 감독 이두용씨의 연출변이다.

실제 영화도 그랬다. 촌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처럼 초당 18프레임(일반 영화는 24프레임)으로 돌아가는 필름으로 재현된 인물들은 빠르게 움직였고, "영사실, 필름 돌려요"로 말문을 연 변사 최주봉씨의 구성진 입담도 즐거웠다. 게다가 화면도 흑백이다.

반면 영화는 그다지 낡아 보이지 않았다. 시대.인물 모두 복고풍 일색이었으나 중간중간 웃음과 유머가 곁들여졌고, 또 막판에 흑백 화면이 컬러로 바뀌는 등 요즘 관객의 감성에 다가서려는 시도가 엿보였다.

감독은 "다분히 신파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우리 영화의 기본적 맥은 신파다. 신파를 퀴퀴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신파에도 시대의 풍자와 해학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한국영화의 선각자인 춘사 나운규(1902~37)의 대표작인 '아리랑'(1926년)이 2003년 오늘 새롭게 태어난다. 원작의 필름.시나리오가 남아있지 않지만 그간 전해오던 관련 자료를 취합해 옛 모습에 가깝게 재현했다고 한다.

춘사 탄생 1백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완성했으나 개봉 일정 탓에 오는 23일 일반에 공개된다. 같은 날 북한 평양영화관과 개선문영화관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제작사인 시오리엔터테인먼트의 이철민 대표는 "일제 강점기 시대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달랬던 '아리랑'의 충실한 복제라고 말할 순 없어도 '아리랑'의 현대적 복원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과연 1백% 아날로그 같은 '아리랑'이 디지털 시대의 관객에게 얼마가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지…. 감독 스스로도 가장 궁금한 점이라고 했다. 지난해 월드컵 열기를 고조시켰던 윤도현 밴드의 '아리랑'도 영화 예고편에 사용돼 눈길을 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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