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렌퀴스트 승계" 보수 기조 선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5일 아침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새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한 존 로버츠 판사를 소개한 뒤 악수하고 있다. 부시는 아직 대법관 인준도 받지 않은 로버츠 판사를 대법원장으로 전격 재지명했다. [워싱턴 AP=뉴시스]

미국의 새 연방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존 로버츠는 타계한 전임자 윌리엄 렌퀴스트를 승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렌퀴스트의 보수적 성향을 그대로 이어받겠다는 뜻이다. 그는 렌퀴스트가 대법원 판사로 있을 때 그의 법률서기를 지냈다.

◆ 보수 성향 유지될 듯=조지 W 부시 대통령이 7월 로버츠를 대법원 판사에 지명했을 때 한 언론은 그를 "진보적 성향의 워싱턴 법조계에서 중량감 있는 공화당 성향의 보수주의자"라고 소개했다.

로버츠는 낙태권을 인정한 1973년의 대법원 판결('로 대 웨이드' 소송)을 뒤집어야 한다는 소신 발언으로 유명해졌다. 당시 대법원 배석판사였던 렌퀴스트도 소수의견으로 낙태권에 반대했다. 그는 이 밖에도 학교에서의 기도를 인정하고 국기를 태우는 행위를 범죄로 인정하는 등 보수적 판결로 일관해 왔다.

정치적으로도 친부시 성향이 강하다. 로버츠는 2000년 대선에서 부시 선거캠프의 법률고문을 맡은 적이 있다. 그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엔 법무부 부차관을 지내기도 했다. 레이건 대통령 때도 법무장관 특별보좌관과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일했다.

보수적이며 친공화당 성향이기에 로버츠에 대한 상원의 인준청문회에서 야당인 민주당 반발이 예상된다. 민주당으로서는 앞으로 수십 년간 대법원을 이끌어갈 인물이 미국 사회의 보수화를 주도할지에 대한 우려가 적지않다. 그러나 로버츠는 상대적으로 법조계의 신임이 두터워 상원 인준이 부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망된다.

로버츠는 행정부.법원.대형 로펌 등을 거치면서 법조.정계.관계 등에 두터운 인맥을 구축해 왔다. 조셉 리버먼 등 중도성향의 민주당 의원과도 친하다. 2003년 항소법원 판사 인준 때는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 3명의 반대가 있었지만 상원 전체회의에서는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7월 19일 대법원 판사에 지명된 이후부터 그는 인준 투표권을 가진 상원의원들을 개인적으로 찾아가 지지를 부탁해 왔다.

◆ 정치적 배경=부시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대법원장을 지명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은 로버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들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렌퀴스트가 타계한 다음날인 4일 오후 백악관 대통령 관저에서 로버츠를 40분가량 만났다. 그에게 대법원장을 공식 제의한 것은 이튿날 오전 7시15분. 스콧 매클렐런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그를 만났을 때 타고난 지도자임을 알았다. 대법원을 이끌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뉴올리언스 등 남부 지방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늑장 대응했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이와 함께 지명이 늦어질 경우 최연장자인 진보성향의 대법관 존 폴 스티븐스가 대법원장직을 대행하게 돼 이를 피하기 위해 서둘렀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경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