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실망스러운 문희상 위원장의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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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경구가 이런 경우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의 처남 취업 청탁건 얘기다. 문 위원장은 2004년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에게 처남 김씨의 취업을 부탁해 브리지웨어하우스 아이엔씨라는 방산업체에 김씨를 취직시킨 사실이 법원 판결문을 통해 드러났다. 더욱 놀라운 건 김씨가 8년간 일을 하지 않고도 급여 명목으로 8억여원을 받아 간 사실이다.

 당시 문 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정권 실세였다. 조 회장이 권력 실세인 문 위원장의 청탁을 묵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권력을 등에 업고, 처남을 위장 취업시킨 권력형 비리라 할 수 있다.

 이 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도의적·정치적 책임까지 면죄부를 받은 건 아니다. 5선 의원으로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중진인 문 위원장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문 위원장이 보여 온 처신과 대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의혹이 불거진 지 며칠이 지났지만 문 위원장은 아직 직접 국민 앞에서 사과하거나 경위를 설명한 적이 없다. 그제 김성수 대변인을 통해 “조양호 회장에게 직접 부탁한 적은 없고, 처남이 문 위원장의 지인과 함께 대한항공을 방문한 것”이란 해명을 내놓은 게 전부다. 간접 청탁이니 문제될 것 없다는 인식도 문제지만 이런 중대 사안을 대변인을 시켜 대리 해명시킨 건 떳떳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양식을 의심케 한다. 더욱이 문 위원장은 제1야당을 대표하는 ‘얼굴’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걸핏하면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해 온 새정치연합이 자기 당의 지도부가 저지른 비리 의혹엔 침묵하고 있는 건 비겁하다. 남의 눈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는 격이다. 같은 당의 조경태 의원은 어제 방송 인터뷰에서 문 위원장에 대해 “당에 여러 가지 피해를 줄 수도 있어…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적 의혹과 비난이 더 확산되기 전에 문 위원장은 국민 앞에서 해명하고 사과하는 게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