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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잡아올린 그물속의 생선처럼|신선한 생활속의 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여성란의 중요한 자리를 지켜 온 「손거올」의 역사도 어지간히 깊어 이제는 여성면의 빠질 수 없는 얼굴이 된지도 오래다.
어두육미라고 해서 생선이나 짐승의 고기에도 미각을 만족시켜 주는 부분이 따로 있듯이, 여성면을 읽다가 「손거울」을 읽지 않으면 맛있는 부분을 놓친 아쉬움을 느끼게 하거나, 신문을 읽지 않은 것같이 허전하다는 독자가 많으니 「손거울」의 관심도는 달리 재어 볼 필요는 없을듯하다.
「손거울」은 주부들의 칼럼이다. 지금까지 많은 주부들이 대거 참여하여 크게는 나라살림 걱정에서 작게는 개인의 감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연으로 「손거울」을 장식해 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손거울」은 주부들에게 창틈으로 새어든 책보만한 따사로운 겨울햇별이었고, 그것은 작았지만 시린 마음을 감싸주는 훈기가 되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손거울」은 한 개인의 희비를 쏟아 소담하게 담아보는 유정한 곳이며, 사회의 어둡고 진곳을 가려내는 총명한 시선이기도 하며, 모든 인간이 바라는 전소망의 안타까운 열기의 터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며, 실상 그래왔던 것이다. 주부는 국가나 사회의 가치관에서나 개인의 영달을 키워감에 있어서 어디다 원을 그려도 그 중심이다. 주부의 글은 오늘의 현실적 실태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도 주부칼럼이 역사가 깊고 어느 칼럼보다 참여와 인기가 높다고 한다.
「손거울」도 예외가 아니다. 하루에 20여통이 훨씬 웃돌게 들어오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우리나라 주부들의 참여도도 뒤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령도 꽤 폭이 넓어 20대에서 60대까지 토고가 왕성하며 그 중에서 30대가 가장 활발하게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지난 한햇동안 발표된 「손거울」의 소재는 거의 주변잡사로 일관되어 있었다.
시어머니·남편·아이들·시장·백화점·친구이야기 등이었다. 더러는 시인이나 작가를 무색케하는 정곡을 찌르는 대범한 글도 있었지만, 주부 칼럼이라고 해서 의도적으로 주부적인 글을 쓰려고 했던 점이 특히 눈에 띄었다.
물론 일상적인 소재라고 해서 나쁠 건 없다. 주부들이란 원래 이런 일상적인 곳에 발을 내리고 그곳으로부터 세상이 비쳐진 것을 보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반드시 주부의 글이라고 해서 주부적인 냄새를 풍겨야 할 까닭은 없다. 부엌냄새·행주·걸레 이야기가 나와야 주부적이 아니다. 「칸트」는 학생들에게 『너희는 나에게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하는것을 배우라』고 말했었다.
일상을 딛고 일상을 뛰어넘는 사색의 탐구와 자주적 인생관의 접근없이는 또한 일상을 극복하지 못하는 상관관계에 인간은 놓여있기 때문이다.
글은 감동이나 충격에서만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창조를 위한 사물의 새로운 모습을 조명해야 하는 의무감에서 출발될 때 진정하게 자신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주부의 심정적 고백이 개인의 독백에서 그치지 않고 폭넓은 공감을 얻어 낼때 그것은 인생의 확충과 아울러 풍부한 감흥으로 의미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파브르」의 『곤충의 생활』이 시인이나 작가가 쓴것이 아니면서 빛나는 문학적 생명을 얻어 시대를 초월해 읽혀 온 것은 과학자의 냉정한 관찰로써만이 아닌 한사람의 시인의 심성으로 인간화하는데 성공하였음이었다.
주부도 이제는 영양의 책임자나 위생의 수호자에 그치는 건 아니다. 주부에게도 응분의 의식이 있어서 일상의 청소에서 사회적 몰염치를 세탁할 수 있는 굳건한 의식노출이 가능해져야 하리라 본다.
어찌 집안의 불결함만 소독하겠는가. 주부의 생생한 경험과 지식으로 소독약품같은 명쾌한 칼럼의 주인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의도적인 글은 독자를 식상케 한다. 기성인의 글을 흉내내는 글은 추하며 감동이 없다. 기성인이 지나쳐 할수 없었던 말,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가 그곳에 담겨져야한다.
놀라운 창의력이나 매끄러운 단맛이 화학식품처럼 배어들지 않은 자연식품같은 싱그러움 그것이다.
그것은 막 잡아 올린 그물속의 퍼덕이는 물고기가 햇살을 받아 빛을 더하는, 살아있는 생명력을 보는 것이요, 나무로부터 갓 따낸 약간의 풋기가 감도는 싱싱함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에 독자와의 신선한 공감도는 더욱 짙을 것이다.
때문에 「손거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숨죽여 듣게 하는 우리들의 의문과 우리들의 해답이 거기 있는 것이리라.
내용은 정확하고 표현에 억지가 없이 문장은 간결해야 좋을 것이다. 소재는 누구나 다루는 것을 피하고 특색있는 것이면 좋을 것이다. 선택되거나 누군가가 읽을 것이라는 생각은 뒤로 미루고 무엇을 자신이 써야할 것인가를 가장 먼저 가려내고 그다음에 어떤 표현이 좋은지 문장법을 공부해야 할것이다. 「손거울」에서 일대 웅변이나 생활의 교훈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악의 군상에서 인간의 거점을 철수하고자하는 여성적 휴머니즘이나 약자의 패배속에서 인간의 가치관을 찾으려는 노력, 강자의 승리에서 인간의 패배를 읽을 줄 아는 눈으로서 광명을 구하는, 소담하면서 남성보다 섬세한 주체를 끌어내는 날렵한 지혜를 기다리는 것이다.
여성을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는 완벽한 2중적 모순이라 부른다.
시기하며 사치롭고 허위롭고, 그러나 검소하고 진실하며 용서하는 모순. 더욱 어머니라는 절대성의 힘과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 남성보다 훨씬 살아있는 글을 쓸수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모순의 힘이다. 이러한 여성의 모순으로 인류 문화는 화를 불렀고, 그 화를 극복하는 인간의 지혜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주부는 바로 이 힘의 원조다.
가정과 사회진출의 양립을 선호하는 오늘의 현대사회에서 주부들의 「손거울」참여는 다른 무엇보다 자기발전이나 카타르시스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며 내일의 도약에 불을 당기는 부싯돌이 되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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