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에 찢긴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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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시피주 빌록시로 가는 90번 고속도로가 카트리나로 인해 완전히 부서졌다. 교각 부위만 남고 상판 부분이 전부 물속에 빠져 얼핏 보면 사다리처럼 보인다. [빌록시 AP=연합뉴스]

▶ 지난달 30일 미시시피만에 인접한 한 마을의 상점이 약탈당하고 있다. [빌록시 AP=뉴시스]

미국 백악관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로 인한 석유 공급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전략비축유(SPR) 방출을 승인했다고 샘 보드먼 미 에너지부 장관이 31일 밝혔다.

보드먼 장관은 이날 MSNBC 방송과의 회견에서 "전략비축유 방출이 어제 저녁 승인됐다"며 "오늘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석유 방출량은 즉각 밝혀지지 않았다. 앞서 미국의 한 석유회사는 전략비축유를 25만~50만 배럴가량 방출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 전략비축유(SPR)란 석유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미 정부가 1973년 이래 비축해 놓은 석유로 멕시코만(灣)의 소금동굴에 약 5억7100만 배럴을 저장해 놓고 있다.

한편 미국 남동부 해안을 할퀴고 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 규모가 마구 불어나고 있다. 지난달 29일만 해도 희생자가 70여 명이었으나 지금은 수백 명이 숨졌을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특히 재산 피해 규모는 2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돼 미국 최악의 재해로 기록될 전망이다.'미국판 쓰나미'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해안 주민 직격탄 맞아=가장 큰 피해지역은 미시시피주로 지금까지 확인된 희생자만 80명을 넘었다. 이들 중 30명은 빌록시의 한 아파트 주민들로 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이 한꺼번에 변을 당했다. 다른 희생자들은 6m에 이르는 해일에 휩쓸려 숨졌다.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현 상황으론 100명을 넘을 게 분명하다. 로이터 통신은 빌록시 대변인이 "희생자가 수백 명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A J 홀로웨이 빌록시 시장은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허리케인 피해는 지난해 말 아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급"이라고 말했다.

카트리나에 강타당한 뉴올리언스는 둑이 두 군데 무너져 도시 전체의 70%가 최고 6m의 물에 잠겼다. CNN은 "물에 떠다니는 시신이 여럿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한편 물바다가 된 도심에 악어.뱀 등이 출현해 주민들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번졌다. 실제로 길이 1m가량의 상어가 목격되기도 했다.

◆ 무법천지된 도심=치안 부재에 빠진 뉴올리언스 등에선 약탈과 차량 탈취가 일어나고 있다. 곳곳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불길도 보였다. 현지 언론들은 약탈자들이 수퍼마켓.보석상 등에 침입, 물건을 마구 훔쳐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루이지애나.미시시피.앨라배마 등 3개 주는 7만5000명의 주방위군을 투입, 치안유지에 나섰다.

단전.단수로 인한 고통도 이어졌다. 지난달 30일 현재 230여만 가구, 500만 명 이상이 전기 없이 지내고 있다. 뉴올리언스 최대 대피소인 수퍼돔에는 3만여 명이 몰려 있다. 이들은 32도를 넘는 무더위 속에서 전기도 없이 사흘째 버텼다.

◆ 사상 최대의 재산피해=미국 보험회사들은 지난달 29일 피해액이 최대 2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지금까지는 92년 허리케인 앤드루가 낸 216억 달러의 피해가 최대였다. 미국 언론들은 카트리나 피해액이 사상 최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금 지급액은 2001년 9.11 테러 때의 300억 달러와 비슷한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예상보다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자 휴가를 이틀 줄여 31일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대통령이 구호활동 등을 독려하기 위해 일정을 앞당겼다"고 밝혔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서울=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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