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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발표한 미국이 잘못인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일본의 정계·언론계등 각계각층인사 2백여명이 소련의 비밀경찰(KGB)로부터 돈을 받고 간첩활동에 협력했다는 KGB소령「레프첸코」의 폭로는 일본사회 전체에 큰충격을 주고있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정치인·언론인·지식인등 이른바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허점투성이인 일본의 보안태세를 문제삼거나 협력자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공표한 미국쪽에 불쾌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자금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사회당의 책임자가 『「나까소네」(중보근강홍) 내각에 대한 미국의 지원사격』이라고 반발한것까지는 있을 수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일본 매스컴들까지 『정치색 짙은 의사록발표』(11일자 조일신문), 『일본 우경화를 겨냥』(11일자 동경신문)등의 논조로 장단을 맞추는 것은 석연치않은 감을 준다.
평론가 「후지시마」(등도자내) 씨는 한술더떠 『미국의 일본에 대한 정보조작이 활발해 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일』이라고 칼끝을 미국으로 돌렸으며 작가인 「나까조노·에이쓰개」씨는 『IBM스파이사건에 이은 미ClA(중앙정보국)의 「대일공격 제2탄」』이라고 펄펄 뛰었다.
일본정부도 『충격적인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생각은 없다』(중자근강홍수상) 는 소극적 반응을 보이고 있고 자민당측도 『정치문제화하지 않을것』(이계당진간사장) 이란 방관적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이번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 버릴 공산이 커졌다.
방위청관계자나 자민당내 일부 강경파에서만 「이런 사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비밀보호법의 제정을 서둘러야 한합다』고 안타까와 하고 있지만 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있다.
물론 이번 「레프첸코」의 폭로가 일부 지식층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의 정책적 의도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측에 있는 것이지 사실을 공표한 미국측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지식층들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미국쪽에 공적의 화살을 돌리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스파이활동 협력자들에 대한 막연한 공법의식이 작용하고 있을수도 있고 반미감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또오다」(후등전정청) 관방장관이 국회답변에서 말한대로 『일본인들은 알게 모르게 이용당하고 있다』면서 누구나 공법의식을 가질법한 일이기도 하다.
또 일본인들의 싹싹하고 친절한 얼굴 뒤쪽에는 패전의 응어리가 반미감정으로 변질돼 엉겨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공안보문제는 감정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2차대전때 일본을 무대로한 「조르게」의 간첩활동으로 소련이 위기를 모면, 결과적으로 일본의 패망을 부채질 했다는 것은 일본인들 자신이 더 잘 알고있다.
인근의 어려운 나라들에 대해 기술정보를 주는데는 한없이 인색한 일본이 자유세계의 군사·정치정보는 자신들과 무관한양 소홀히 취급하는것을 보면 이나라가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감을 지워버릴수없다. 【동경=신성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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