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통 통 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간혹 술잔을 든 채 지루한 시간을 버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건배사 듣는 자리다. 주례사가 길면 살짝 빠져나가거나 잡담이라도 하련만 센스 없는 건배사는 ‘극기 훈련장’으로 데려가기 일쑤다. 동의하지 않아도 맞장구를 쳐주는 게 예절이고 관행이다. 주로 선배나 상사가 건배를 제의하기 때문이다. 비공개 원칙이지만 평가항목은 네 가지. 간결하고 새로우면서 재미와 의미가 곁들여지면 좋다. 진부한데 해설까지 길게 곁들이면 최악이다.

 건배사를 소재로 우리금융지주 이순우 회장이 쓴 칼럼을 읽었다. ‘통통통’ 선창하면 ‘쾌쾌쾌’ 화답한다는 내용이다. 의사소통, 만사형통, 운수대통. 그리고 유쾌, 상쾌, 통쾌. 주문(?)만 외워도 뭔가 뻥 뚫릴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2014년 송년회식 자리의 술맛은 좀 개운치가 않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내일이 마치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시간의 간극 같아서다. 누군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눈앞에 펼쳐진 오늘은 빛바랜 졸업앨범 비슷해서일까.

 대학은 종강을 맞았다. 느닷없이 칠판에 通이라고 쓰고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통. 잘 읽는다. 소통, 형통, 대통 모두 ‘통할 통(通)’이다. 건배사로 제격이다. 이번엔 統을 썼다. 역시 맞힌다. 통일, 통솔, 통합 모두 ‘큰 줄기 통(統)’이다. 건배사로 쓰는 데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은 痛이다. 못 맞힐 리 없다. 두통, 치통, 복통. 고통의 형제들 항렬은 가지런하다. 자, 지금부터 퀴즈다. ‘통쾌하다’고 말할 때 이 셋(通, 統, 痛) 중 어떤 ‘통’을 써야 어울릴까. 이번엔 정답비율이 높지 않다. 痛快가 맞는데 通快나 統快라고 유추하는 숫자가 적지 않다.

 해석을 곁들이는 건 선생의 직분이다. “통쾌해지려면 고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잘 통해서, 한통속이라서 즐거운 게 아니라 견뎌야 할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에 즐거움이 크다는 얘기다. 불행은 행복의 맞은편에 있지 않다. 같은 선상에 있다. 불행의 마지막 정거장이 행복이다. 그런데 그걸 못 참고 중간에 내려버린다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학생들의 표정에 어둠이 깔린다. 마지막 ‘건배사’가 너무 길었나?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떠도는 모양이다. 미국 CIA 고문이 충격적이었다면 한국 청년들이 겪는 희망고문은 비극적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자꾸 희망을 이야기하니 듣기 고통스럽다는 얘기다. 칠판 글씨를 지우는 선생도 적잖이 뜨끔했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