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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의 명작 속 사회학 〈48〉 『레미제라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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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홍주연]

“자, 이 인형은 네 것이다.” 손님의 말에 소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소녀는 울고 있었다. 주인집 딸들의 인형을 몰래 만졌다가 야단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이를 안쓰럽게 여긴 한 손님이 소녀에게 인형을 사준다. 구박만 받던 소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다음날 소녀는 손님의 손을 잡고 학대받던 여인숙을 나서게 된다. 소녀는 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행복해한다. 소녀는 코제트. 손님은 장발장.

코제트가 인형을 선물받는 이 장면은 어른이 된 지금 읽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불행했던 소녀가 태어나 처음 받는 사랑 덕분에 행복해졌다. 내가 아는 이야기들 중 가장 극적이며 감동적인 크리스마스 선물이 나오는 장면인 것 같다. 이 장면을 담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혁명기를 다루는 방대한 장편소설이다. 어린이용 축약본은 주로 앞부분의 장발장과 미리엘 주교, 코제트 이야기를 상세히 서술하고 뒷부분의 혁명 이야기는 짧게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 제목도 『장발장』으로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축약본도 원작이 주는 메시지는 확실하게 담고 있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란 프랑스어 뜻 그대로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코제트는 왜 이렇게 불쌍하게 살고 있었을까? 겨우 여덟 살에 여관집의 부엌일과 청소는 물론, 한밤중에 숲속 샘터까지 가서 물 긷는 일도 해야하다니. 한겨울에 맨발로 눈 위를 걸어 심부름을 가고, 자주 매를 맞아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말라 붙어 있었다. 그 이유는 엄마 판틴이 코제트를 테나르디에 여인숙에 맡기고 양육비를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코제트와 엄마는 떨어져 살아야했을까? 왜 판틴은 딸을 친척집도 아닌 곳에 맡겼을까?

장발장이 판틴의 유언을 지키려 코제트를 데리러 가던 때는 1823년,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프랑스에서도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지던 때다. 농촌이 붕괴되고 도시화가 시작돼 가난한 여성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 도시로 와서 가정부가 되거나 공장에 취직했다. 일하는 엄마들이 늘자 전문적으로 아이를 맡아 키워주는 집도 생겨났다. 맡겨진 아이들은 학대를 당하거나 그 집의 허드렛일을 강요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코제트 역시 테나르디에 여인숙의 하녀 노릇을 했던 것이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포스터에는 헐벗은 채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일하는 어린 소녀가 그려져 있다. 그 소녀가 바로 코제트다. 원작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자 코제트는 작품이 발표되던 1862년부터 현재까지 불쌍한 아이의 대표가 되어 아동 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의 유명세 때문에 슬프게도 다른 형태의 아동학대가 생겨나게 되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연극이 대중적 오락이었다. 유랑극단은 유명한 소설들을 각색해 공연을 하곤 했다. 『레미제라블』도 인기 있는 작품이었다. 어린 배우들은 코제트 역을 실감나게 하도록 세게 꼬집힌 후 무대로 내보내졌다. 덕분에 우는 연기를 완벽하게 할 수 있었고, 이를 보는 관객들은 아동 학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다. 학대받는 코제트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 부당대우를 받는 약자들이 무대에나, 소설에나, 옛날에나 있다고 생각하는 한, 세상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레미제라블!

박신영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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