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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박사와 함께하는 ‘어린이 프로파일러 설록의 사건 일지’ 〈5〉 밝혀진 보물의 정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오은우]

“어서 다시 가 보자”

성격 급한 홍주가 재촉하자 대홍이가 펄쩍 뛰었다.

“이제 자유 시간 다 끝났어. 법당에 모이지 않으면 죽비로 두들겨 맞는다고!”

“우리가 여기에 온 건 사라진 보물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지. 진혁이가 발견한 M의 메시지는 중요한 단서야. 그리고 내일 자유 시간까지 그 메시지가 그대로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스님께는 나중에 용서를 구하고 일단 다녀오자.”

설록의 말에는 대홍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혁이 앞장서고, 홍주와 설록 그리고 대홍이 차례로 칠봉산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따라 바쁘게 움직였다. 겨우 황령사 경내를 벗어날 즈음 대홍이가 털썩 주저앉았다.

“난 더 이상 못 가겠다. 숨도 못 쉬겠고,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아.”

“그러니까 평소에 운동을 좀 하지, 매일 먹기만 하고 공부만 하니 그 모양이지.”

홍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화를 냈다. 그러자 진혁이가 대홍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아, 우리 축구 훈련할 때 타이어 잡고 뛰는 근력훈련 많이 했어. 내 손 잡고 경사가 급한 길만 넘기면 끝까지 갈 수 있을 거야.”

홍주도 대홍이의 손을 잡았다. 손등으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를 슥 닦아낸 대홍이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대홍이 못지않게 체력이 약한 설록도 핏기없이 하얘진 얼굴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대홍의 등을 힘껏 밀어주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을 쉬긴 했지만, 결국 ‘조자룡 굴’에 도착했다.

갑자기 아이들을 향해 달려온 낯선 남자

‘284 - M -’

팻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설록에게 홍주가 물었다.

“어때, 그 가짜 책에 적혀있던 메시지와 닮았어?”

설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방식이야. 그리고 우리가 오는 길에 유사한 팻말이 전혀 없었던 걸 보면, 군사용 표지나 산림 지리 표지도 아니야. M이 남긴 메시지가 맞아.”

그때, 갑자기 돌무더기가 무너지며 남자 어른 한 명이 아이들을 덮쳤다. 홍주의 오른발이 반사적으로 강한 옆차기를 날렸다. 퍽! 소리와 함께 고개가 확 돌아간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곧이어 “네, 이놈들 !” 커다란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방어 자세를 갖춘 홍주와 진혁 뒤로 설록과 대홍이 얼른 몸을 피했다. 스님이었다.

“자유 시간이 끝난 지 오랜데, 지금 예서 뭣들 하고 있느냐!”

바닥에 쓰러졌던 남자도 몸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김 형사, 괜찮아요?”

스님의 걱정스런 물음에 남자는 연신 턱과 무릎을 문지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홍주, 네 부모님이 경찰관이시라면서! 이분은 홍주 부모님 요청으로 너희를 지켜주러 오신 상주경찰서 김 형사님이다.”

알고 보니 김 형사는 아이들을 덮친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다가오다가 실수로 돌무더기에 걸리며 넘어진 것이었다.

“야, 홍주, 너 발차기 아주 매섭더라. 지금 바로 형사 해도 되겠다.”

홍주는 얼굴이 빨개지며 꾸벅 인사하고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전 M이 갑자기 공격해 오는 줄 알고.”

김 형사와 스님이 서로 쳐다보며 말했다.

“M?” 그리곤 바로 두 사람의 시선이 팻말로 향했다.

“저걸 말하는 거냐?”

설록이 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김 형사를 쳐다봤다.

“죄송하지만, 신분증 좀 볼 수 있을까요? 저희가 조금 의문스러운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중이라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잠깐 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김 형사는 외투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안에 있던 경찰관 신분증을 보여줬다. 신분증을 확인한 설록은 사과와 감사 인사를 거듭한 후에 스님과 김형사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스님이 빙긋이 웃었다.

“그러니까, 내 인상이 험해서 날 의심했다. 그리고 너희들을 태우고 오던 중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던 게 ‘고려시대 책’ 이야기를 듣고 놀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날 M이나 M의 하수인 정도로 생각했다. 이거구나.”

설록은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여 절을 하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스님. 어린 생각에 잘 모르고 의심을 했습니다.”

“사실, 내 얼굴이 좀 무섭게 생기긴 했지. 하하.”

의문의 숫자 ‘284’와 훈민정음 해례본

일행은 황령사로 내려와 M이 남긴 ‘284’의 비밀을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주소 번지 수, 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인 해발 고도, 좌표,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없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284’의 의미들을 짚어봤다고 생각했을 때 설록이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M이 처음에 좌표를 남겨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한 것에 힌트가 있을 듯합니다. 단순히 ‘284’라는 다음 숫자를 제시하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황령사, 혹은 칠봉산, 조자룡 굴, 상주와 고려시대 책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스님은 양미간을 모으고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너희를 데려오는 차 안에서 이야기했지만, 황령사는 고려시대 책하고는 관련이 없다. 칠봉산도 고려시대 몽골군의 공격과 조선시대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낸 성벽의 잔재가 남아있을 뿐이고, 조자룡 굴도 그저 중국 삼국지의 영웅인 상산 조자룡의 출생지가 이곳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올 뿐이지. 그런데 상주… 상주는.”

가만히 듣고 있던 김 형사가 불쑥 “훈민정음”이라고 내뱉듯 말했다. 그러자 대홍이 바로 반론을 했다.

“훈민정음은 고려가 아니라 조선시대 세종대왕께서 백성에게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글을 만들어 주신 거죠.”

“맞다, 그런데 상주는 지금 훈민정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단다. 우리 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설명하고 해설한 책을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한단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지. 그런데 얼마 전 이곳 상주에서 또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거야. 당시 학자들이 인쇄된 훈민정음에다가 의미와 풀이를 손으로 써넣은 것이라 이미 국보로 지정된 해례본보다 훨씬 가치가 크다고 평가를 받았지.”

스님의 얘기기에 홍주가 재촉하듯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런데요? 왜 몸살을 앓아요?”

“그 훈민정음 해례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배씨인데, 조씨라는 사람이 훈민정음이 원래 자기 집에 있었는데 배씨가 훔쳐갔다며 도난 신고를 한 거야. 그러니까 배씨는 자기는 훔친 게 아니라며 훈민정음을 감춰버렸어. 경찰에서 수사를 했는데 다른 증인들이 조씨 집에서 봤다고 진술하는 바람에 배씨가 절도죄와 문화재관리법 위반죄로 검거되었고, 검찰로 넘겨져 수사를 받는 도중에 조씨가 훈민정음을 국가에 기증했지.”

“배씨가 감춘 훈민정음을 어떻게 조씨가 기증해요?”

진혁이의 질문에 김 형사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조씨는 어차피 고집 센 배씨가 자기한테 국보급인 훈민정음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국가기록에 기증자로 자기 이름이라도 올리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지. 문화재청에선 훈민정음 회수가 급해서 일단 실물도 없이 조씨의 기증을 받아주고 떠들썩하게 기증식을 했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지.”

“당연히 배씨는 더 마음이 틀어져서 훈민정음을 절대로 내놓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겠군요.”

중얼거린 설록의 말에 김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문화재청과 검찰, 그리고 법원에서 배씨에게 겁을 줘서 훈민정음을 내놓게 하려고 그랬는지 배씨에게 이례적으로 높은 형량인 징역 10년 형을 내린 거야.”

계속해서 설록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배씨 입장에서는 국보급 보물이라는 이익, 그리고 억울하게 절도범으로 몰리고 명예가 훼손됐다는 감정이 겹쳐서 징역 10년이라는 위험 앞에서도 쉽게 훈민정음을 내놓지는 않았겠군요.”

“그, 그렇단다. 너, 꼬마가 대단하구나. 배씨는 항소심 법정에서 자신의 명예가 회복되면 훈민정음을 국가에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나자 ‘아직은 훈민정음을 내놓을 때가 아니다’라며 집에 틀어박혔단다. 문화재청과 학계, 그리고 뜻있는 국민 모두가 혹시라도 훈민정음 상주본이 훼손될까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중이란다.”

“어른들이란… 정말…”

진혁이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던 찰라, 설록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김 형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훈민정음이 국보 몇 호죠?”

“국보 제70호, 상주본은 아직 실물 확인이 안 돼서 지정이 안 됐고, 간송박물관에 보관 중인 같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보 제70호지.”

“그럼, 국보 제284호는요?”

스님이 갑자기 죽비로 자신의 이마를 쳤다.

“하, 내가 그 생각을 못했다니. 국보 제284호,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 바로 불교 보물이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스님을 쳐다봤다.

“너희 팔만대장경이라고 들어봤지?”

“네” 어린이가 합창을 했다. 그리고 대홍이가 이어서 신나게 설명을 했다.

“국보 제32호, 경남 합천 해인사에 보관 중,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아내기 위해 만든 목판 대장경. 전 세계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것으로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어 있죠.”

모두 대홍이를 쳐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오~!” 홍주가 쑥스러운 듯 얼굴이 빨개진 대홍이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대홍이 국사 검정고신가 뭔가 합격하더니, 대단해요, 대단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라고 바로잡는 대홍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스님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초조본 대장경은 그 해인사 팔만대장경보다 무려 200년이나 전에 제작되었다.”

대홍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선생님이 팔만대장경이 우리나라에 있는 가장 오래된 대장경 목판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렇지. 초조대장경 목판은 모두 불타 버렸으니까. 대구 팔공산에 있는 부인사에서 보관했었는데, 몽골군과 전쟁 중에 화재로 소실되었단다.”

설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국보 제284호는 목판이 없는 초조대장경의 인쇄본 책자겠군요.”

“그렇지, 대장경 전체 600권 중에서 제162권, 170권, 463권 대반야바라밀다경 인쇄본이란다. 그런데 이상하구나. 너희 얘기론 ‘책 형태의 보물’이 사라졌다고 했는데, 국보 제284호는 책이 아니라 두루마리 형태거든.”

표창원 박사는… 1966년생. 범죄심리학자. 탐정 셜록 홈스에 매료돼 경찰대학에 진학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경험하고 전문적인 범죄수사를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 1997년 엑서터 대학에서 범죄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 최초 범죄심리분석관으로 활동하다 2001년 경찰대 교수로 임용, 2012년까지 재직했다. 퇴직 이후 표창원의 범죄과학연구소를 열고 범죄심리학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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