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연중 소장의 생활 속 발명 이야기 〈6〉 카트리지 연필과 볼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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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민재]

깎지 않는 연필을 만든 소년 우리가 보통 쓰는 연필은 심이 닳으면 나무로 감싼 부분을 깎아내야 쓸 수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깎지 않는 연필’은 50여 년 전 세상에 나왔다. 이를 발명한 사람은 놀랍게도 나이 어린 대만의 소년이었다.

소년의 이름은 홍려. 가난한 대장장이였던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기술을 익혔다. 돈이 없어 특허는 낸 적 없지만 수많은 발명을 한 꼬마 발명가였다. 낮에는 아버지의 대장간 일을 돕고, 밤이 되면 발명에 몰두했다.

홍려의 방은 밤마다 불이 환했다. 하룻밤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정리한 기록만도 수십 장이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연필의 품질이 좋지 않아 자주 부러졌기 때문에 연필을 깎다 아이디어를 놓치는 일까지 생겼다. 능률을 깎아 먹는 불편에 홍려는 깎지 않고 쓸 수 있는 연필을 발명하기로 결심했다.

오직 연필 하나에만 매달렸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을 세워 연구한 홍려는 입안이 텁텁하여 이를 닦기 위해 치약과 칫솔을 손에 쥐었다. 항시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래, 바로 이 원리다. 꽁무니를 누르면 치약이 밀려 나오는 원리를 연필에 응용해보자.’

즉, 연필의 꽁무니를 누르면 연필심이 앞으로 밀려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연필심을 카트리지(Cartridge)에 끼우고, 속이 빈 플라스틱 파이프에 열 개씩 넣은 것이 전부. 연필심이 닳으면 그 카트리지를 빼고 파이프 꽁무니를 눌러 다음 카트리지가 나오도록 고안했다. 이때가 1972년. 단숨에 도면을 그린 홍려는 이번에는 무리하여 특허를 출원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대만에서 가장 큰 문구회사 사장이었다. 사장은 엄청난 돈을 제시하며 특허권을 팔 것을 요구했고, 홍려도 거액을 받아 들었다.

큰 돈을 주고 특허권을 사들인 문구회사는 처음엔 사람들의 조소를 받았지만 생산 개시와 함께 주문이 밀려들었고, 어느새 86개국에 수출하는 세계적인 상품으로 떠올라 해마다 5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볼펜을 처음 발명했으나 잊혀진 존 로우드 아르헨티나에서는 매년 9월 29일을 발명가의 날로 제정하고 풍성한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이날은 볼펜의 발명가 라슬로 비로의 생일로, 그가 볼펜을 발명한 것은 1938년이었다.

사실 비로보다 앞서 볼펜을 발명한 발명가도 있었다. 미국의 존 로우드가 주인공이다. 로우드는 볼펜으로 1888년 특허등록까지 했다. 잉크통으로부터 잉크를 공급받아 쓰는 부분의 작은 강철 볼 베어링과 이보다 작은 볼 세 개로 흐름을 조절하는, 수시로 잉크를 충전할 필요가 없는 펜을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비로에 가려진 것은 로우드의 볼펜은 결점이 많아 필기구로서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이다. 잉크가 새고 번지기 일쑤인데다 중력에 의존해 수직으로 들지 않으면 필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결국 로우드의 볼펜 특허는 빛을 보지 못하고 깊은 잠을 자야 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더 없이 편리한 볼펜을 개량하려는 발명가들의 도전은 계속됐다. 볼펜의 대중화 시대를 연 라슬로 비로가 대표적이다. 그는 원래 발명과 거리가 먼, 의지도 부족하고 목적도 뚜렷하지 못한 연약한 사람이었다. 의과대학에 진학했으나 중퇴했고, 직업도 걸핏하면 바꾸는 변덕까지 있었다.

비로가 볼펜 발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신문기자로 일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하루 종일 기사를 쓰는 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편리한 필기구였다. 당시엔 펜촉에 잉크를 찍어 글을 쓰거나 만년필로 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펜이나 만년필은 잉크가 쉽게 마르지 않아 글을 쓰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작은 실수에도 잉크가 번져 원고지가 지저분해지기 일쑤였다.

‘빨리 마르는 펜이 필요한데 내가 발명해 버릴까.’

포기도 쉽게 하지만 도전도 쉽게 하는 비로다운 생각이었다. 앞서 발명된 로우드의 볼펜을 비롯한 각종 필기도구와 다양한 종류의 잉크를 모아 장단점을 분석했다.

비로는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여 잉크를 전달하고, 잉크통을 고압 상태로 유지해 펜을 수직으로 세우지 않아도 필기를 할 수 있는 펜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헝가리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비로는 여기서 특허권을 얻었다. 볼펜에 주로 쓰이는 점성잉크는 1938년, 비로의 형이자 화학자인 게오르그가 잉크를 끈적끈적하게 하는 방법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1943년에는 중력 공급식 관을 추가해 상품화했다. 비로는 자신의 비로(biro, 상표명) 볼펜을 별도의 잉크 충전 없이 1년간 필기가 가능하다는 약속과 함께 판매했다. 값도, 유지 비용도 저렴한 볼펜은 일상에서 만년필을 대체했다. 우리나라에는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1963년에 국내 생산을 개시해 1960년대 말 대중 필기구로 정착했다.

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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