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3%대 성장, 1~2%대 물가 … 디플레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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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경제성장 전망 3.9%를 그대로 유지하긴 힘들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또 기수를 틀었다. 불과 두 달 만의 노선 조정이다. 11일 이 총재는 연 2%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한 금융통화위원회 결과를 전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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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은은 석 달에 한 번 꼴로 경제전망치를 수정한다. 이 총재 발언은 지난 10월 4%에서 3.9%로 낮춘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하향 조정하겠다는 의미다. 내년 물가상승률 예상치도 낮아질 전망이다. 이 총재는 “유가 평균 도입단가가 10% 떨어지면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0.2%포인트 낮춘다는 모형분석 결과가 나왔다. 유가가 올 하반기에만 30% 이상 하락했기 때문에 앞으로 물가상승률을 상당폭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내년 1월 수정 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날 금통위는 지난달에 이어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은은 올 8월과 10월 0.25%포인트씩 금리를 내려 현재 2%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9~2010년과 같은 수치로, 역대 최저다. 이런 상황에서 ‘1%대 기준금리 실험’을 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이 총재는 “지난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 더해 가계대출의 높은 증가세로 금융안정에 보다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낮은 금리와 부동산 대출 규제가 맞물리며 올 3분기 1060조원까지 부푼 가계 빚을 의식했다는 얘기다.

 국내 경기 흐름을 보는 시각은 어두워졌지만 이 총재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과 장기 침체)’ 가능성을 일축했다. 전날 경제전망을 하며 한은의 행동을 촉구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직접 겨냥했다. “KDI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3.5%, 물가상승률 전망을 1%대라고 했는데 3%대 성장과 1~2%대 물가를 디플레라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구조적인 문제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저성장·저물가를 탈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선 내년에 기준금리가 1%대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졌다고 본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물가 상승 압력이 낮아졌다는 이 총재 언급은 기준금리를 내년 초 또는 상반기에 추가로 인하하리란 시장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고 했다.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 전망 하향 조정’과 ‘기준금리 인하’는 시차가 좀 있더라도 세트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예상보다 경기가 더 나빠질 것 같으면 금리 인하로 선제 대응을 하는 식이다. 한은이 지난 10월 수정 경제전망 보고서를 내면서 금리를 낮출 때도 이 논리를 따랐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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