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도 멀다 vs 적자 뻔하다 … 평창, 결단의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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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알펜시아 스포츠파크 앞 조형물. 평창올림픽 썰매 종목을 일본에서 치르자는 주장을 놓고 지자체와 체육계·학계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뉴시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분산 개최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어젠다 2020’을 통과시켜 올림픽을 복수의 도시에서 열 수 있도록 길을 텄다. 강원도와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분산 개최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학계에서는 일본이든 국내든 분산 개최를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북한 마식령 스키장을 이용하자는 제안도 있다.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평창 단독  돈만 따지면 올림픽 의미 사라져

◆노승만 강원발전연구원 기획경영실장

- 단독 개최를 주장하는 이유는.

 “시범경기(테스트 이벤트)까지 불과 2년 남았다. 분산 개최를 논의하기에 너무 늦었다. 올림픽을 경제 논리로만 생각하면 대회를 개최할 도시는 어디에도 없다. 올림픽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인류 평화와 화합을 위한 무대다.”

 - 공사를 멈추는 게 손해를 줄이는 것 아닌가.

 “분산 개최에 따른 손익을 충분히 따져보지 않았다. 득보다 실이 클 것으로 본다. 경제적 요인만 고려한다면 썰매 외 다른 종목들도 일본 나가노에 줘야 할 것이다.”

 - 분산 개최에 따른 역효과는.

 “기존 시설을 활용한다면 새로 올림픽을 개최할 도시가 어디에 있는가. 특히 겨울올림픽에 필요한 인프라를 갖춘 도시는 전 세계에 얼마 되지 않는다. 여러 도시가 돌아가며 세계인의 축제를 즐기자는 올림픽 정신에 어긋나는 거다.”

 - 국내 분산 개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북 무주 스키장을 이용하는 방안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평창에서 너무 멀다. 경기장이 분산되면 행정력도 흩어지므로 시행착오가 생긴다. 실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

 - 경기장을 가건물로 짓고, 대회 후 철거하자는 안도 나온다.

 “오히려 그게 더 아깝지 않나. 철거비용도 꽤 들 것이다. 강원도에 들어서는 동계 인프라를 대회기간에만 쓰는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잘 짓고 나중에 잘 활용하는 게 좋다. 유럽이나 일본은 겨울 스포츠 시설이 많다. 거기에 올림픽을 치르느라 추가 투자를 했기 때문에 사후활용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동계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대표가 훈련하고 대회를 치를 장소가 없다. 종목별로 경기장 하나씩은 국내에 필요하다.”

해외 분산  일본과 나눠서 시설·인건비 절약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 평창의 단독 개최를 반대하는 이유는.

 “막대한 적자가 날 게 뻔하다. 단독 개최를 계속 추진한다면 민심이반이다. 6개 신축 경기장 공정률이 10% 안팎인데 지금 중단하는 게 손해를 줄이는 일이다. 대회 후 철거 비용이 들고, 놔 두면 유지 비용이 든다. 암담하다. 겨울올림픽 후 시설을 제대로 활용하는 도시가 없다.”

 - 한·일 분산 개최의 기대효과는.

 “건설비용과 행정력을 절감할 수 있다. 나가노에서 썰매 경기가 열리면 운영비를 일본이 내게 하면 된다. 인천 아시안게임도 예산 부족 탓에 인력 운영이 부실했다. 몇 개 종목을 넘기면 시설 비용도 줄이고 사람 쓰는 데도 여유가 생긴다.”

 - 여름올림픽 종목을 일본서 받아올 수 있을까.

 “썰매를 주고, 배드민턴 같은 실내 종목을 받아올 수 있지 않을까. 실내 종목을 위해 강원도(평창)의 기존 시설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새로 지을 수도 있다. 실내체육관은 대회 후에도 활용 가능한 시설이다. 평창이 겨울올림픽과 여름올림픽을 모두 치르는 도시가 되는 거다.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 올림픽을 경제논리로만 보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효과’를 얘기한다. 보이지 않는 건 실체가 없는 거다. 그걸 기대하다 빚더미에 앉을 순 없지 않은가. 한·일 분산 개최는 권고안이다. 오히려 평창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분산 개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다. 이건 위기가 아니다. 평창이 올림픽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할 기회다.”

국내 분산  서울·무주 경기장 활용이 현실적

◆최대혁 서강대 Star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 평창의 단독 개최에 회의적인 이유는.

 “정부와 강원도의 재정 부담이 상당히 크다. 국내 다른 도시의 시설을 활용한다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

 - 일본과 분산 개최안은 어떤가.

 “그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은 우리가 필요해서 공동 개최했다. 우리나라 인프라로는 단독 개최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겨울올림픽은 국내 시설을 활용하면 충분히 치를 수 있다.”

 - 국내 분산 개최의 예상 효과는.

 “빙상은 서울 태릉이나 목동 링크를 활용하면 된다. 스키는 무주의 시설을 쓰면 된다. 국내에 ‘올림픽 도시’가 많아지면 국민적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개·폐회식장은 (내년 말 완공 예정인) 서울 고척돔을 활용할 수도 있지 않나.”

 - 평창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천과 부산이 2028 여름올림픽 유치 신청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 이에 앞서 평창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당장은 서운하겠지만 강원도의 예산 문제는 심각하다. 국내 분산 개최가 실익이 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 메가 이벤트 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할까.

 “과거에는 올림픽과 월드컵 등을 통해 대외 홍보효과와 국민 통합효과를 누렸다. 이젠 ‘승자의 저주(경쟁에서 이겨도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느라 승자가 오히려 위기에 빠지는 것)’를 걱정해야 한다. 한 국가의 여러 도시에서 스포츠 이벤트를 즐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작은 가치가 모여 큰 가치를 창출하는 걸 우리가 보여줄 수 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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