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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다 유…부패 추방 제스처|안드로포프 크렘린 입성 한달을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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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리·안드로포프」가 고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어 소련의 최고 권좌인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지 꼭 한달이 됐다. 이 한달 동안 「안드로포프」는 그를 지켜보는 바깥 사람들에게 새 체제의 성격과 소련의 앞길에 관한 몇가지의 수수께끼와 힌트를 함께 던져주었다. 「브레즈네프」 시대의 사람들이 그대로 버티고 있는 정치국·서기국 등 당 최고 기구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안드로포프」는 어느 만큼 세력을 굳혔는가. 지난달 연방 최고 회의 때 예상을 깨고 국가 원수 자리를 겸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아직 불씨가 남아 있는 크렘린의 권력 쟁에 관한 이런 의문들엔 누구도 뚜렷이 답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편으로 「안드로포프」의 지도 스타일과 국내외 정책 방향에 대해선 적지 않은 시사가 있었다.


「안드로포프」가 들어선 후 소련 정치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KGB (국가 보안 위원회=정보 및 비밀 경찰 기구)의 부상이다. 「안드로포프」 자신이 67년부터 올 봄까지 15년 동안 KGB의 장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난달 22일의 당 중앙위 전체 회의에선 역시 KGB 간부 출신으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당 제1서기인 「게이다르·알리예프」 (59)가 정치국 정위원에 뽑혔다.
이틀 뒤 연방 최고 회의에서 그는 제1부수상에도 임명됐다. 지방 정치인이 두번을 뛰어 차기 수상 후보가 된 것이다. 「알리예프」는 19세 때부터 보안 업무에 종사, 67년부터 2년 동안 아제르바이잔 KGB 책임자 노릇을 한 사람이다.
23일의 연방 최고 회의에선 또 현 KGB 의장 「비탈리·폐도르추크」 중장이 취임 반년만에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나타나 「제국주의자들의 첩보 및 파괴 활동」이란 긴 연설을 했다. 이날 프라우다지는 한면의 거의 전부를 할애해 「페도르추크」의 연설문 내용을 실었다.
이밖에 각종 보도 매체들에 소개되는 새 얼굴들 중에도 KGB와 관련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서방 분석가들은 그동안 그늘에만 숨어있던 KGB세력의 정치 전면 진출에 두가지 의미를 둔다. 즉 ▲「안드로포프」 자신이 부려 보아 익히 알고 또 자기 사람인 인재들을 기용한다는 실용적 의미 외에 ▲앞으로 경제 부문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대신 사상 통제는 더욱 엄격히 하겠다는 정책 의도를 나타내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대내 정책>
「안드로포프」는 그동안 공식 발언을 통해 앞으로 과감한 경제 개혁을 실시하고, 곳곳에 뿌리박은 부패와 비 능률을 철저히 드러낼 뜻을 비쳐왔다. 러시아인이 아닌 「알리예프」를 중용한 사실은 이런 의지를 반영한다. 「알리예프」는 13년간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을 이끌면서 부패 추방과 경제 개선으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이다.
부패 추방과 세대 교체, 그리고 자파 부식을 위한 단속과 인사 조치는 이미 시작됐다. 「안드로포프」 취임 직후 크라스노다르란 지방의 전당 서기가 부패 혐의로 체포됐으며, 모스크바의 큰 백화점과 식품점 관리자들도 걸려들었다.
이어 철도상과 농업 담당 각료가 해임되더니 최근엔 「브레즈네프」파인 당 중앙위 선전과장이 좌천됐다. 또 신임 콤소몰 (공산 청년 동맹) 제l서기에 39세의 「빅토르·미신」이, 국가 출판 위원장엔 49세의 「보리스·파스투호프」가 임명되는 등 젊은층의 빠른 영전도 눈에 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경제 난국 타개다. 올 공업 성장률 2·3%로 전후 최악, 4년째의 곡물 흉작. 실용주의적이고 냉철한 「안드로포프」는 이 난국을 깨기 위해 「브레즈네프」 시대에 미뤄만 온 경제의 구조적 개혁을 점진적으로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련 경제가 제길을 찾으려면 현재 GNP의 14%가량을 차지하는 국방비를 줄이거나 적어도 동결시켜야 한다.
그렇게되면 군부가 반발할 수밖에 없다. 경제 개혁의 성패는 기득권을 가진 관료층의 저항과 이 「대포의 반발」을 어떻게 달래느냐에 달려 있다.
군을 설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서방과의 군사적 긴장 관계를 가능한 한 완화하는 것뿐이다.

<국제 정책>
새 체재의 실력자로 알려진 「우스티노프」 소련 국방상은 최근 『미국이 MX 미사일을 생산하면 소련도 이에 맞선 새로운 다탄두 ICBM을 개발해 배치하겠다』고 초강경 발언을 했다.
이 같은 논조는 「브레즈네프」가 죽기 얼마 전부터 소련이 보여준 대미 강경 자세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란 인상을 준다. 그러나 크게 보아 소련의 대외 정책은 「강」보다는 「유」쪽으로 기울고 있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 10년 동안 소련은 미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군사력을 키우면서 아프리카·동남아·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곳곳에서 무모하게 군사적 모험을 벌임으로써 외교적으로 점점 더 고립돼왔다.
그사이 미국은·중공과 관계를 개선했고, 소련은 서쪽으론 미·나토 축에, 남쪽으론 미·중공 축에 의해 포위 당한 꼴이 돼버렸다.
지난달 22일 당 중앙위 전체 회의에서 「안드로포프」가 한 연설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 같은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의지가 뚜렷이 엿보인다.
「브레즈네프」 장례식 때 「안드로포프」가 이례적으로 많은 외국 지도자들을 만난 것도 이런 생각에서였다. 이후 소련은 중공에 계속 부드러운 얼굴을 보이는 한편,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조건만 맞는다면 철수할 생각이 있다고 막연하게나마 운을 떼었다. 그동안 반 동면 상태였던 대 중동 외교를 되살리기 위해 「안드로포프」는 최근 「후세인」 요르단 국왕 등 아랍 사절단과도 만났다. 집권 초기의 소련 지도자로서는 전례 없이 활발한 외교 활동이다.
그러나 소련 정책에 대한 이 모든 분석과 전망은 바깥 세계가 본 「안드로포프」의 개성과 의도 (이것 자체가 확실한 상수는 아니다)에 소련 지도부가 따라와 준다는 가정 위에 서있다. 더우기 소련은 서방 국가들처럼 정책 방향과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데다, 혁명으로 세워진 나라이면서도 급격한 변화는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안드로포프」의 집권이 정치 기술과 군·KGB의 지원, 그리고 「가장 나은 자질」 덕분이었지 든든한 당내 지지 세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도 정책의 급 전환을 막는 요인이다.
지난 한달간 소련의 움직임이 몸짓과 조짐 단계를 넘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소련의 권력 승계란 장막극은 이제 첫 부분이 상연됐을 따름이다. <정춘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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