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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에 괴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그동안 엉뚱한 허위사실을 조작하여 사사건건이 나를 잡으려고 한것이 집권당의 횡포였다. 이번 사건도 정치적 음모이니 정치적 효과를 거두려면 이대통령의 비위에 맞도록 내게 사형을 판결해줄 것이며 역사에 남을 이 사건을 공정하게 재판하려면 무죄판결을 내려달라』는 말로 죽산은 최후 진술을 끝맺었다.
10월22일 상오 피고인 전원의 최후진술이 끝난뒤 김용진재판장은 검찰을. 향해 <보석중에 있는 18명의 피고인들이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방검사는 <그렇다>라고 대답한 뒤 피고인 전원의 보석취소를 신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1심의 무죄선고에 따라 보석으로 풀려났던 윤길중등 18명의 피고인의 재구속이 그 자리에서 집행됐다.
재판장의 구속명령에 낌짝 놀라 안경을 벗었던 박기출을 선두로 다시 묶인 피고인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고 가족들도 한참동안 말을 잃고 있었다. 법원 구치감에 수용됐다가 40분후 서대문으로 압송되는 자동차에 실리면서 그들은 <이번엔 진짜 공산당으로 몰리나 보다>라고 어두운 얼굴이 돼있었다. 어떻게 갑작스레 법정구속을 했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대해 김재판장은 <판사 기피신청도 했던 사람들인데 어찌 도주의 우려가 없겠느냐>고 했다.
피고인의 법정구속은 곧 있을 언도에서 무거운 체형이 주어질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떠들썩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른바 재판부에 대한 협박장이 그런 분위기를 말해주었다. 당국의 발표로는 진보당사건 담당 재판부와 검찰에 계속 협박장이 날아들고 있어 수사하고 있다고 했다. 조인구검사 앞으로 보내진 협박편지는 『나는 진보당을 지지하는 한사람인데 만약 조봉암선생이 사형당하는 날에는 너도 동시에 죽을 것을 각오하라>는 내용이라고 했다. 온갖 억측과 풍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10월25일 선고공관이 개정됐다. 2심의 심리가 시작된 날로부터 42일만이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예상들이 떠돌았기 때문인지 법정은 아침9시부터 인파가 밀려들었다. 학생도 많이 섞인 일반 방청객들로 법정 안팎이 메워지자 경찰도 삼엄한 경계를 폈다. 10시30분 판결문이 낭독되기 시작했다.
김재판장은 조봉암·양명산 두 피고인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간첩및 보안법위반죄를 적용, 검찰의 구형과 똑같이 사형을 언도했다. 판결문은 조봉암 피고인의 혐의중 ▲북의 김야수에게 밀사를 보내 평화통일을 협의했다는 것 ▲간첩 박정호와의 관련 혐의 ▲조총련출신인 정우갑을 통한 조총련과의 연락 ▲정대영이 북괴의 지령에 따라 진보당강평서를 제출했다는등의 협의는그 증거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국시를 위반한 평화통일을 제창한 것과 양명산피고인을 통해 조봉암피고인이 수시로 연락하면서 자금을 얻어쓰는등 간첩행위롤 했다는 것은 그 증거에 비춰 유죄라고 결론지었다. 그밖의 진보당간부들에 대해서도 1심의 무죄를 뒤엎고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진보당의 선언문, 강령정책등이 북괴와 상통한다는 검찰측 주장을 인정하고 진보당은 결사의 목적이 불법적이었다고 규정했다.
형량만은 검찰의 구형 20년보다는 낮은 3년내지 2년의 체형이었지만 검찰의 공소장과 법적견해를 같이한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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