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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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는 20일 터키대통령이 방한한다. 낯선 나라는 아니지만, 그 나라의 대통령을 맞기는 처음이다.
셀추크 터키족이 바그다드에 인성, 당시의 회교 칼리프로부터 술탄(Sultan-회교군주)의 칭호를 받은 것은 1055년의 일이다. 이때부터 사실상 중동의 회교국은 터키의 정치 지배아래 들어갔다.
셀주크에 이어 흥기한 오스만 터키족은 또 I517년에 메카와 메디나 두 성지의 보호권까지 얻어 술탄-칼리프제도를 확립했다. 터키는 이때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수도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은 「불멸의 도시」로 불려졌다.
오스만 터키의 광채가 시들기 시작한 것은 「나폴레옹」의 이집트속정(1789∼1801)에서 비롯됐다. 이후 유럽 열강은 다투어 터키영에 진출, 그리스가 독립했고 이집트가 영국의 보호국이 됐다.
이어 러시아-터키전쟁으로 터키는 발칸우도의 대부분을 포기하고 소아시아로 물러났다. 특히 독일과 동맹한 l차 대전에서의 패배는 터키의 독립조차 위협하게됐다.
「케말·파샤」의 근대화운동은 바로 터키의 꺼져 가는 국영에 불을 당긴 터키족의 회생운동이었다. 그는 국민의회를 지도, 술탄을 추방하고 공화국을 세웠다. 바로 l924년의 일이었다. 그의 개혁정치는 괄목할 만 했다. 수도를 앙카라로 옮기고 아라비아문자를 로마자로 바꿨다. 일부다처를 금하고 여성의 베일 착용을 금지했다.
그는 터키인들에게 강제로 성씨를 사용케 하고 자신도 「케말·아타튀르크」로 이름을 바꿨다. 「아타튀르크」(Atatrk)는 「터키의 아버지」란 뜻.
그러나 터키의 현대사는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계속되는 개혁과 사회 혼란, 정치·경제의 불안정으로 정권이 군부와 민간사이를 오락가락해야만 했다. 독재자 「덴데레스」가 타도된 이후는 더욱 정정이 불안했다.
내한하는 「케난·에브렌」터키대통령도 터키공화국 58년 사상 대통령이 된 6번째의 4성 장군이다. 그는 80년9월 무혈쿠데타로 「데미렐」정권을 축출했다. 그가 가장 역점을 둔 사회정책은 법과 질서.
그가 집권하기 이전까지 터키에선 하루평균 25명이 피살되는 테러 왕국이었다. 군부의 강경조치로 이제 무법천지는 사라졌으나 경제난은 계속되고 있다. 80년에 물가는 세자리 숫자로 올랐고 겨우 작년에 35%로 완화됐다. 그래도 실업률은 전체 노동인구 l천6백만명의 17%나 된다. GNP는 1인당 l천4백50달러.
터키정정의 불안요인은 바로 좌·우익의 대립. 군부는 좌익의 온상이던 노조에 강경정책을 쓰고 있다. 「에브렌」대통령은 『정상적인 신발을 신고선 진구렁을 통과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달 임기7년의 대통령에 선출됐다.
「에브렌」은 「케말·아타튀르크」의 개혁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과연 「케말」의 정치이념인 공화주의, 민족주의, 인민주의, 국가주의, 세속주의, 혁신주의의 6개 강령이 어떻게 실연될지 궁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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